(2002.2.17)
餘糧(여량)이 무엇인지 아세요?
술을 이르는 또 다른 옛날 말이라고 합니다.
남을 餘(여)..곡식 糧(양)....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며..외세의 침탈이 없기를 기원하며..
살아 남기 위해서 먹는 것이 너무 심각했던 우리네 선조들이
어쩌다가 곡식이 남아 돌면 만들었다해서
술을 여량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지요.
먹고 살기 빠듯한 세상에 술을 빚어 먹은 것은 호사한 일이라는 뜻이 담겨 있나 봅니다.
한 때는 개인이 술을 담그면 안된다고 해서 밀주를 단속하는 시대도 있었어요.
많은 곡식이 투입되어 효율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 술 몇방울이 만들어지니까..못먹고 헐벗어 죽어 가는 사람이 있는 시대에는 경제 정의 차원에서라도 그리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육식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했던,잘 먹고 잘살기라는 티비 프로그램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구요.
어떻게 먹어야 하나..우리 식탁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 프로그램이라고 그럽니다.
육식이 나쁘고 채식이 좋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합니다.
질문하나 해야 할까 봅니다.
왜 힌두교 교리에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을까요?
왜 이슬람 교리에는 돼지고기를 금지하고 있을까요?
문화나 교리는..그 본류를 따라가 보면..
선인들이 생존을 위한 필요성,통치자의 통치수단등 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만들어 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단히 고매한 정신적인 문화 라고 주장하지만..신의 이름으로 엄격한 권위의 잣대를 휘두르지만
실상은 먹고 사는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그 옛날에 본 적이 있지요.지은이를 잊었습니다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힌두교가 생긴 인도에서는 그 옛날에도 헐벗고 힘들게 살았던 모양입니다.
소고기를 먹게 되면..그 고급식품을 먹게 되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고..
그로 해서 전체 샅출물이 줄어든다고 봤던 것이지요.
소고기를 금하고 오히려 숭앙하는 대상에 넣으므로서 더 많은 사람이 굶게 됨을 막자는 정치경제의 역학의 산물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아예 종교의 교리에 집어 넣어서 소고기를 금해 버린 흔적이 있다는 겁니다.
이슬람교에서 금하는 돼지....
돼지라는 동물은 생존을 위해서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체질이라고 하네요.
맞아요..뽀송한 동물이 아니라 항상 질척거리는 돼지우리 만을 봐 왔군요.
사막이 많은 이슬람권에서 질척이게 살아야 하는 돼지를 키우는 것이 너무 호사한 일이라고 봤던 것이지요.
그 맛있는 돼지고기를 아예 금하게 된 배경이랍니다.
"그렇게 맛있는 돼지고기"..그렇게 표현했더라구요.그 책에서....
우리나라에서는..부위별로 차이는 있지만..소고기에 비해 약 3배 가격차이가 날 걸요?
외국에서는 비슷하다고 하는 것 같던데....
우리나라는 돼지가 천대를 받는 셈이에요.
힌두교나 이슬람..
사정은 다르지만..그들의 교리에 담긴 엄격함은
실상..경제와 정치적인 뜻이 배경으로 있습니다.
통치자들도..모두 먹지 않는..의미에서는 휴매니티를 느끼게 하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고기를 탐하는 것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지적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마당에 지혜로움과 긴 안목의 인본주의적 타부인 셈이지요.
고기 1단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물 3단위(불확실 함) 정도를 투입해야 할 겁니다.
술 1단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물 4단위(불확실 함) 정도를 투입해야 될 겁니다.
우리는 단순히 술과 고기라고 이름 부르지만
저급의 곡물을 응축되어서 고급의 술과 고기를 만들어 내는 경제적인 메카니즘을 이해해야 합니다.
단순히 그런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지구 자원이 쓰여지고..환경 파괴가 있게 되고..그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 지는 거라는 이야기지요.
전세계 육지의 1/4 이 소 방목용 토지입니다.
전세계 곡물의 1/3 이 가축 사료용으로 쓰입니다.
아프간이나 아프리카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어려운 논리나 이론이 필요없지요?
정의로움과 공평함을 넓게 설정한다면..지금 내가 술과 고기를 탐한다는 것은 마치 죄악일 것만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불기둥 세례를 퍼부었던 신의 응징..
난잡한 섹스가 난무하는 현대의 소돔과 고모라에 신의 응징이 있겠지요.
그래서 아무래도 신의 응징일 것만 같은 "에이즈"..
그 비슷한 것으로..
고기를 탐닉하고 경제 정의를 멀리하는 인간들에게
아무래도 신이 또하나의 응징을 내린 것 같은 병.."광우병"....
이 비관적 관점의 주제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요...
결론이라고 해 봐야 별것 있을까요?
참고 덜 먹자이지요.
청빈과 인고의 습관으로..모든 것들의 효용가치를 높이자는 이야기입니다.
많이 탐하는 생활 습관으로 효용이나 자극이 모두 다 시들해진 이지음에 욕구의 억제만이 우리의 자극과 입맛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살면.. 건강도 좋아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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