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희망이라는 것은...
(2002. 3.30)
희망.
희망이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대충..
바라마지 않고 이루고자 하는 것..정도의 뜻이 될 겁니다.
그러나 그 말은 단순한 표현일 뿐..따져서 더 들어가보면 중요하고도 깊은 뜻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 정도로 평가해야 맞지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뭔가를 이루어려는 의미이거나 구체적인 바램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기 보다..
사람은 앞으로의 세상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하고
좀 더 나은 그 세상이 끝남없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의,본원적인 의미에서의 희망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곤란하고 딱한 위치에 처해 있어도
다 살아가게 마련인 것은
사람은 참 절묘하게 만들어졌다는..희망이라는 묘약을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참 절묘하게 만들어졌다는 그 뜻은..
그 희망이라는 마술은 좀 곤궁한 처지가 되어야 좀 더 명료하게 효력을 발휘한다는 의미에서..
사람은 참말로 기가 막히게 만들어 졌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없는 자와 많이 가진 자 차별없이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고..
많이 가짐이 우리의 욕심이지만..그 욕심을 버려야만 하는 재미있는 트릭도 느낄 수 있게 인생이란 게임이 만들어 졌기 때문이지요.
이런 자각이 든다면..아마도 사람의 이지로 따지기 보다는 절대자 조물주의 노고를 찬미해야 하는 단계로 올라서야 할겁니다.
신이시여..고생하셨습니다.
만들어 놓긴 잘 만들어 놓으셨는 데..제가 잘못 사용한 것일 뿐이라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아..희망 이야기였지요?
일제시대 때..일본놈들이 우리 아버지들을 끌어다가 탄광에 가두고 일을 시켰던 이야기는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일본놈들이 어떤 놈들인가요..그 자들은 죽는 것을 우습게 보는 놈들입니다.
가미가제 특공대가 되어 비행기를 몰고 미국놈 배에 부딛혀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니까요.
가미가제 비행사들이 술 한잔 마시고..가지고 타는 것이 있습니다.
칼입니다.죽이는 도구..칼...
그 놈들은 칼을 선물 받으면 그렇게 좋아 한다고 합니다.
칼을 선물 받고는 좋아서..마누라를 부른답니다.
그리고는 칼의 성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마누라를 그 칼로 단칼에 베어 버리고 한 마디한답니다.피묻은 칼을 보면서....
"호~~ 칼..잘드는 데....좋다...."
물론..옛날 이야기..꾸민 이야기가 맞겠지요.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죽음을 하찮게 보는 의식..칼을 좋아하는 국민성..여자를 동물 취급한 의식을 빗대어서 누가 꾸며만든 이야기이겠지요.
아니..그런 놈도 있었겠다 싶어요.
그런 그들이 전쟁 상황에서 전쟁물자를 생산하는,조센징 탄광근로자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분명..일 하다가 죽으라는 식이었을 겁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놈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 하다가 죽었을..살아 남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을 쳤을 우리 동포..우리 아버지,할아버지의..
땅 속 수백미터 안 쪽 막장 어느 구석의 벽에 쓰인 낙서 글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한글로 쓰인 한 마디..
"방구의 꽃은 똥이다"
그 상황에서 그 글을 쓴 그 분에게 살아 남기 위한 유일한 방편은 희망이었을 겁니다.
지저분한 이야기 아닙니다..살아남기 위해 본인에게 던진 핏빛 농담입니다.
곧 있을 죽음..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그래서 차라리 숙연함까지 느끼게 하는 처절한 절규와 다름 아닙니다.
그 어둔 심연에서 인간이 보인 희망잡기 몸짓..그게 사람일겁니다.
이야기 꺼내려고 왜놈 이야기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희망이란 죽음 그 순간까지 인간이 가지고 놓지 않는 인간의 살아가는 무기입니다.
그 비슷한 예를 들기 위해서 일본놈들 이야기를 또하나 해야 할까 봅니다.
만주 벌판에 일본 관동군 사령부가 만든 생체실험 공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미친놈들이 그 인간 생체 실험 공장을 세운 취지는 그렇다고 합니다.
세계를 정복해야 하는 데..장애가 되는 인간들은 전부 죽여야 하는 데..
그들을 죽여 없애려면 총알 하나씩 먹인다고 해도 그 총알을 만들어 댈 수가 없으니 싸고 손쉽게 죽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멀쩡한 사람을 세균에 감염시켜서 진행되어지는 것을 체크하고..더위,추위에는 얼마나 견디다가 죽나도 관찰하고..진공상태에서는..물속에서는..추락해서는..상처을 입은 상태에서는..하여튼 갖은 방법으로 사람을 이리 저리 죽여 보고는 관찰일지를 써가고 있었어요.
가축한테도 그리 할 수는 없지요..그래서 통나무라고 불렀다고 하던가 그럴겁니다.
그 통나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중국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었겠지요.
주로 부랑인을 썼고..우리의 독립투사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 뻔합니다.
오늘..흉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 있군요.
사람이 죽음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이런 흉한 이야기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심리 실험도 했다는 이야기인 데..
죽음을 한 시간 앞둔 절망적인 사람이 하는 것은 섹스였다는 겁니다.
모르는 남녀가 밀폐된 유리 방에 남겨졌고..한 시간 후에 죽일 것임을 통보했고..절망한 그 사람들이 아무 의논없이 옷벗고 섹스를 한다는 관찰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의 섹스란..마지막으로 즐기는 한 판일까요?
아닐 것 같아요.
절망의 상태에서는 즐기는 행위는 불가능할 거예요.
본능이라고 봐야 맞겠지요.
저는 그것을..희망을 가지려는..인간의 지난한 몸짓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낫는 행위로서 섹스는..
어쩌면 유한한 인간이 무한대를 꿈꾸는,영원함을 열망하는 본능에서의 몸짓일겁니다.
식물이 자기가 썩어서 씨앗을 발아하듯이..동물이 자기가 죽어서 어린 것들의 먹이가 되어버리는 그 행위는 단순한 종족보존,번식의 본능이라기 보다 적어도 영원함을 동경하는 정신적인 메세지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죽음의 절망에서 가지고 싶은 것은 당연히 살고 싶은 욕구일 것이구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내 분신이라고 만들어..나를 영원하게 이어가야 한다는 차선책이 유일한 희망이 될겁니다.
그런 희망 이어가기의 의미에서의 섹스이겠지요.
아이..
우리에게 아이라는 이름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다름 아닙니다.
유한함을 인식하고서 부터 밀려오는 무한함에 대한 동경....
아이란 무한함에 대한 염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지요.
아이가 없더라도..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니까요.
영원함에 대한 믿음도 갖고 희망이라는 것도 가져 보고....
지금 현재 배부르고 등 따습다면 우리는 행복해 해야 맞습니다.
작은 불편함이나 모자람이 있어서 우리를 더더욱 희망에 젖게 할 수 있으니..
본능적으로 행복의 길로 가게 되겠지요.
쓸 데 없는 욕심만 버린다면..말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습니다.
모든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버지..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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