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만

사랑을 아는가

산책길에서 2004. 9. 18. 00:12

당신은..내가 안스러워서 사랑하게 됐나요..아니면..사랑하기 때문에 안스러워졌나요?--요즘도 하는, 어떤 드라마 대사중에서....글쎄..사랑은 그 표현이..안스러움과 함께 드러나는 것 같다.아니면..적어도..발현되는 그 근원이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전에 한 번 이야기 한 기억이 있지만..우리 어머니가 내게 한 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억되는 말은..'가엾어라'였다.어린 자식을 보면..측은지심이 생겨서 못견딜 정도의 마음이라니..그래서..나를 보면 입에 달고 하신 말씀..'가엾어라'였다.모든 여인들이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아는 사람의 아내는..자신의 갓난 아이를 보고 있으면..불쌍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그야..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사랑이 깊어서..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행복하기를 바라고..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으로 잠 못자고..그런 다정함이 사랑이라는 것일 것이다.좀 더 긍정적인 사람이라면..그 염려의 마음이 깊더라도..그다지 눈물을 흘리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결국..세상이라는 이 마당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게 되느냐 하는..개인의 기본 성정에 따라서..애정의 표현도 달라지는 것일 것이다.아이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이..세상에서 가장 몸살나게 사랑하는 경우라고 한다면..자극적이고 요란하고 마음 산란하게 하는 것..연애 감정도 또한 재미있는 감정이다.그런데..그 사랑이라는 것이..막강한 감정이기는 하지만..그 개념이나 방법을 이를라치면 꽤나 막연하기도 하다.끌리고 몰두하고 절절히 애타게 좋아하는 것일텐데..사랑을 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가..내게는 좀 막연한 것이 사실이다.다른 사람들도 그다지 잘 아는 것 같지 않다.마음 설레이고 자꾸만 끌리고 가슴 조리며 연모하고 잘 보이고 싶고 무조건 위해 주고 싶다해서..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다.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을테니까.....'더 이상 바랄나위가 없이 좋은 상태..'가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몸의 각종 기능과 신진대사는 원활하고..마음은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되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보통..연애하는 마음이 그런 것일 것이다.항상 웃게 되는 거..비길 데 없이 기쁜 일....그런데..그런 마음 상태의 볼륨이 숫치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혹은..스스로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로 불확실하다는 것이다.'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사랑하는지 알았는데..아니었어.''그런데..사랑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이지?'상대를 얼마나 안스럽게 바라볼 수 있느냐..좀 명료하게 방향이 보이고..우열이나 등수매김이 가능한 감정이라서..앞에 언급한..사랑이 먼저냐 측음함이 먼저냐..하는 화두를 꺼내 놓게 되었다.사랑하게 되면..보통..걱정되고 잘해 주고 싶고 안스러워하게 된다.일반적으로 그래서 그렇지..사랑의 강도를 재는 바로메터로서 안스러운 마음의 정도를 따지는 게..사실 정확한 잣대는 아닐 것 같다.사랑하는 아이가 안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것은..지나친 우울의 관점일 수도 있고..자기연민의 습관일 수도 있어 뵈지만..그냥..사랑의 마음이 지나쳐서..눈물이 나오는 것으로만 봤으면 한다. 아울러..이 나이에..사랑타령을 하는 것이 어색한 구석이 있어서..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되묻거나..사랑이냐..계산이냐..신분 전환이냐..노후대책이냐를 구분하고 따져 파헤치기가 어렵다.이유가 어떻든 마음이 땡기면..그냥 '사랑'으로 간주하고 말 일이다.맞는지 틀리는지..도덕적인지 아닌지..순수한지를 따지고 들어간다면..꽤나 많은 사람들이..그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날지도 모르고.....다만..우리 나이쯤 되면..경험자입장에서 객관적이라는 빌미를 내세워..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으려는 경향은..좀 적절치 않아 뵌다.마치 교통사고와 같아서..어느날 불쑥 예고없이 들이닥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꽤나 불신이 묻어 있고 냉소적인 관점이다.그렇다면..피하는 것이 장땡인 셈..메마르고 계산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악다구니와 같아 뵌다.그냥..사랑이든 뭐든..안스러움으로 보듬어 주고 위안받고 싶은 대상이 그리운 것..열병 앓듯 아픈 사랑보다는..아무 자극도 없는 맹물의 맛에서..뭔가를 새로움을 발견하듯이..사랑을 기억해 내거나..기쁨을 되찾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다시 한 번 새로움으로 바라봐야 한다.안스러운 마음으로.....
-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바리톤 김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