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이..그게 전부일까
언어가 없으면 사고(생각)도 없다..언어학자들이 하는 말이다.
생리현상을 비롯해서 아주 기초적인 것을 빼곤..나머지 모든 것들은 언어가 있어야 사유해서 구체화 될 수 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거나..추상적이거나 정신적인 것들은..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붙이고 생각해야 그 관념이 오롯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아마존 밀림 속 어떤 부족은..쓰는 단어가 20가지가 안된다고 하던데..
그네들 입장에서는 단순하나마 일상에 큰 불편함은 없을까?
없을 것 같기도 하고..아니면 원시적 사고력 밖에 더 없을 것 같아서 안스럽기도 하고..
골치 아프지 않으니 좋은 점도 있겠지만.
언어는 사유와 상상의 산물..
또한..인간의 사유와 상상은 언어의 산물..
접근하는 도구로서 두 부분이 상호 영향을 주고 있지만..
그렇다면..그 어떤 가능성이 생긴다.
존재하지만..언어가 없어서..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을 것이고..
존재하지만..상상을 못해서..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을 것이라는 것.
상상이 부족해서 언어를 만들 수 없었을 가능성..
언어가 없어서 상상물을 연상할 수 없었을 가능성..
그러니까..우리는 익숙하게 발달된 언어로만 상상해 온 역사를 살아왔지 않았을까.
중요한 존재임에도 모르고 있거나 감히 연상하지 않은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확정된 진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막연함에서 또다른 막연함을 낳은..순환논리 오류이기 때문에..
그것들에 의한 나의 지식은..
내가 모르는 본질과 비교해서..매우 미약하거나 쓸데없는 것이거나 잘못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것.....
모르겠다.어리석은 내가 그것들을 어찌 알겠는가.
언어로 규정되지 않은 것 까지 카바하기에는
내 이지가 왜소하고 능력이 미약하다.
아무리 짛고 까불어봤자 내 바탕은 부정되어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다니....
내가 아는 것이 미약할 뿐더러 모두 뒤집어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면..이건 보통 낭패가 아니다.
결국..인간이 갖을 수밖에 없는..숙명이고 한계일 것이다.
다만..하심(下心)을 실천할 뿐이다.
겸손하게 수용할 일만이 내가 할 일일 것이다.
단지불회 (但知不會)..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일...
(오늘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좋은 글귀를 차용코자 한다.)
若欲求會 便會不得 약욕구회 변회부득 (알려고 한다면 알지 못할 것이요)
但知不會 是卽見性 단지불회 시즉견성 (다만 알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게 곧 깨달음의 경지)
*******
#Ⅱ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이름들
슈퍼마켙에 물건 사러 가서 진열대를 둘러 보다가..
내가 사려는 물건은 잊어버리고..엉뚱한 상념에 빠진 적이 있다,멍청하게 서서.
우리가 일상에 필요한 물건들이라는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것을 문득 깨우치게 되었다는 것.
사람들이라는 위대하고 존엄한 영역에게서에서 내가 느꼈던 외경과 신비감의 무게와..
진열대 물건들의 단순하고 조악한 모습들과 비교되면서..
확연하고 언뱔란스한 느낌..
작은 혼돈이다.
아이들이 좋아하기 마련인 슈퍼마켙..
욕구가 잦아들어버린 어른들도 이따금 이용하는 슈퍼마켙..
거기에 있는 물건들은..
의외로..간단하거나 헙소하거나 웃기거나 조악하거나 남루한 것들이라서 놀란다.
사람들이 저런 것을 구매하기 위해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다투고 갈등한단 말인가.
캠핑 물품 목록을 작성할때..그 종류보다 몇 배 많은 정도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저런 것들을 돈 주고 사서 쓰고 있구나..
저런 것만 있으면 되는구나..
아니..저런 것들이 존엄한 인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이..웃기는 일이다.
정말 새삼스러운 각성이다.
과자 라면 통조림 껌 음료수 과일 담배 술 건전지 종이컵 면도날 북어 계란 오뎅 두부 콩나물 기타등등....
물론..비싸거나 크거나 뽐내려는 물건들은 다른 곳에서 판매를 하지만..그것은 별도로 하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매우 다양할 텐데..저런 간단한 진열로 모든 사람의 요구를 기본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니..
사람들 삶이 전부 다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뜻일까.
식당들도 거의 비슷비슷..우리나라가 잘 나가는 나라들보다는 좀 단순하다는 평가가 있는 모양지만.
새삼스럽게..
우리네 욕구가 획일적이거나 삶의 얼개가 아직 엉성한 것은 아닐까..생각케 된다.
슈퍼마켙에 진열되어져 있는 물건들 말고 더 좋은 물건은 무엇이 있을까.
인간의 존엄과 필견될 만한 것을 파는 가게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이 단순함에 젖어 살고있으니..별 다른 생각이 없다.
내 상상력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그냥 뭔가 더 좋은 것 중요한 것들을 기다려 본다..고 해야 할까.
다만..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필적할 수 있는 가치들은..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물건이나 상품으로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것 일게다.
어렴풋이 전해지는 전설과도 같은 것들.....
*******
#Ⅲ
내가 좋아하는 말들
내가 갖는 삶의 태도..
큰 것을 탐하지 않으려 한다.
일부러 큰 것을 좇아 따라 다닐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일상에서 크고 강한 것을 놓치기 일쑤인데..달리 헛수고 할 필요가 있을까.
느낌의 문제..
지금 이 순간..지금도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세밀하게 규정하고 풍요롭게 느끼기 위해서라고 할까..
그 방편으로..명칭과 단어에 대한 집착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말은..관형사 형용사 빼고 사물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이름들이 궁색하니..좀 한계가 있다.
그러나..그 나마 알고 있던 협소한 것들 마저..요새는 나이 먹어서 깜빡거린다.
없는 언어..상상 못하는 영역들은 둘 째 치고라도..
협소한 우리 언어도 버거워 하니..참 쓸쓸한 일이다.
사용하려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하고..환장할 것 같이 며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 단어나 이름들은 공책에 적어 놓는 습관도 생겼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전부 적어 보고 싶어졌고..
한 번에 다 적어내려갈 수가 없어서..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적어봤더니..
1년도 훨씬 넘게 시간이 걸렸고..
언젠가..노래방에 있는 노래책을 보고 느낀 점..
내가 좋아 하는 단어는 여기에 다 있었는데..괜히 혼자 애쓰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절절함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낱개들이 상품들을..그 동안 준비 해 왔고
이제 빈 진열대에 하나 하나 올려 놔 본다.
이름이 있어서..그 의미가 부여 되었다.
엄선..
자유 명예 순수 진실 정직
신념 고결 겸손 헌신 희생
연민 절제 배려 참을성 관용
고마움 칭찬 은혜갚기 사랑 난괜찮아
탐구 열정 신뢰 통찰력 착하다
맑다 그리움 예쁘다 기다림 만남
다정함 꿈 기쁨 행복 웃음소리
싱그러움 환희 소박함 감동 엑스타시
감성 낭만 자존감 고독 혼자
영혼 초연 깊은이해 해방 마지막
여인 아내 키스 그녀가슴 포옹
아이 소녀 강아지 나무 시냇물
주막 해질녘 호롱불 바느질 바람
맥주와인 처마 커피 산책 시골
기차 흙 산 비 신록
낙엽 보리밭 새 붕어 배
나들이 외딴섬 장작 조난 일탈 저녁먹거리
홑이불 말린빨래 밑간 겉절이 연필 수첩
성프란체스코 토마스하디 알파치노 존레넌 장자 샤롯갱스블르
문소리 보헤미안랩소디 아일랜드 지중해 러시아
*****
문소리와 장자가 나란히..ㅎㅎㅎㅎ
그 동안 공책 한 면에 빼곡히 적혀있던 수많은 단어들 중에는 선택되지 못하고 지워진 것들이 더 많다.
나(我) 용기 온유 설렌다 포근함 엄마 성모님 안온 인자하다
슬픔 호기심 강인함 깃들고영글다
여보 섹스 애무 불장난 블루 차이콥스키..등등은 더 많은 이름들이 그냥 탈락했다.
나 엄마 성모님 차이콥스키도 잘렸으니..엄청난 잣대로 엄선한 셈이다.ㅎㅎㅎㅎ
******
그런데..좀 쓸쓸하다.
더 없나?..
이 욕심은 또 뭔가.
쭉 적어서 나열해 놓고 보니..단촐하다.
없다..내가 아는 말로는 더 없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뜻이 모두 광대한 데..어찌 단촐하다 할 수는 있겠는가마는..
다만..그 동안에..그 하나하나의 뜻을 다 망각해 버렸다고 해야 맞겠지.
뜻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절절한 느낌을 잊었겠지.
오히려..너무 거대하고 과장되었으며..감히 내 입으로 읊조리기에..좀 간질간질 간지럽기도 하다.
전시된 진열대 물품들을 다시 하나하나 훑어본다.
그런데..
마음을 다잡고 다시 봐도..
아무래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이상하다.
수퍼마켙에서처럼..의외다.
이게 뭘까..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좋아 하는 말들..
내가 좋아 하는 단어들..
내가 좋아 하는 형상과 사물의 이름들..
나열된 말 조각들..진짜 좋아해?
그냥 겉 멋 부리는 것이거나..그래야 할 것 같아서..가 아니구?
관념의 유희들..의미없는 나열?
모두 절실했는 데..소박한 마음으로 닦고 매만져서 올려놨는데..
낯설음으로 다가 온다.
이 생경하다는 느낌..부질없거나 공허하다는 느낌은..뭘까.
슈퍼마켙 진열대를 보고 느꼈던..남루하다는 느낌까지....
이기심..사람들의 시선..과시욕..자극 탐닉..우월감..정복감..컴플렉스..질투심..애착..미련..지배욕..블럭버스터..
진열대에..이런 재미있고 다이나믹한 것 없어서 그럴까?
관념으로만 빠지려는 내 모습이..보기에 거북한 건가?
현실이거나 보편의 바탕에서 이탈되어..근처를 겉도는 것 같아서?
자신들과 다르면 난리법석인 사람들이 비웃을까봐?......
인문이 몰락한 세상인데..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나 혼자 빛 바랜 옷을 입고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쓸쓸해 하고 있는 형국일지도 모른다.
일단..
더 이상 스스로 폄훼하지 말자.
의미를 부여하려한 시도는 없었지만..그렇다고 무의미하게 함몰되는 것도 마무래도 못마땅하다.
그 빛 바랜 옷..
그게 진짜 명품일텐데 말야.......
#Ⅳ
내가 이렇게도 많은 말들을 알다니....
수 만개의 단어들과 말의 느낌들과 문장들의 미묘한 느낌들을 모두 꿰뚫고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사람은 어처구니 없이 바보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실..위대하며 놀라운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지 싶다.
본디..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인간의 이지력에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으나..
어쩌면 그건 욕심 때문일 것..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지금..
부정할 수 없는 내 자신일 것이다.
특히..내 자신이 왜소하게 하찮게 느껴질 때 라면..
한 번 끄집어 내어 감사히 되뇌어 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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