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만

이 밤 추위에 떠는 사람이 없기를

산책길에서 2011. 11. 23. 22:12

# 1

한미 FTA 비준이 되었다는 데....

 

 

 

어제..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이 우리나라 국회에서 결국 통과 되었다.

결국..그렇게 됐다.

 

이 큰 협정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누구나 인정하듯..대기업들은 이득이 되고..

농민이나 일반국민들은 경쟁력이 떨어져서 피해를 본다는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재벌 기업들은 온통 환영 일색..

그와 관계없는 국민들은 대부분 분통을 터뜨리는 분위기다.

종북,빨갱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근대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기는 하다만..

지금..의식있는 시민들은 광화문에 모여 집회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집회 컴플렉스가 있는 집권자들은..

한파주의보 내려진 추운 날씨에 몇 되지도 않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바람이 매서워 체감온도 영하 10도 이하의 이 추위에..그냥 나다녀도 동동 거리며 웅크리는 날씨에..저런 미친짓을 저지르고 있다. 

지금 살의를 느낀다.

 

복잡한 협정서 분석은 하지 않더라도..

재벌들은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이야기이고..

이 사회의 약자들은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고..

재벌들에게 양보를 얻어내거나 국민 세금으로..약자들의 손해를 보전해 주어야 한단다.

거지 만들어..적선해 준다는 뜻이다.

왜 그 짓을 할까..누구를 위해서.....

 

신자유주의는 그 끝을 모르고 치닿고 있고..그 대열에 소외된 사람들은..도움을 필요로 하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

돈 문제도 되지만..자존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의도에 협조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멀어 보이는 그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가..당장 내 발에 떨어진 불이 문제다. 

 

당연히..부익부 빈익빈..

가뜩이나 양극화 심해서 나라가 절단날 지경인 지금보다도 더 극심해 진다는 이야기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까?

 

나라는 외적 형태이지만..그 연대의 속성은 정신일 것이다.

옳다는 것에 대한..믿음과 상호 공유라는 질서가 깨진 사회다.

거기에 점점 가중되는 계층간의 갈등 구조들..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갈등..

기존의 가진 자와 새로 가지려는 자 간의 갈등..

노인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

찌질한 이데오로기들,지역 맹신들간의 충돌..

그 모든 것들이 완화되어야 사회가 안정적일텐데..

그 정도 심화된다면 부러질 수 있다고 본다.

 

낙타의 등은..마지막으로 올려지는 짐 때문에 부러진다.

tiping point (임계점)라는 말이 있다.

낙타의 등이 부러지는 것은..임계점에 다달은 낙타의 등뼈가 맨 마지막 올려놓은 물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족 정기와 정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이 아사리판에,,

맨 마지막 짐이 무엇이 될 것인가.

 

*********

 

그들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탐욕이 너무 커 눈이 멀어버렸다.

잡아먹더라도 회유하며 키워서 잡아 먹어야 하겠다는..스마트한 인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먹잇감의 씨가 마를지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둘만큼 여유롭지 없다.

 

또한..집요한 야수의 사냥 철학과 닮았다.

악귀처럼..모조건 무댑보 무자비하게 삼키고 본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벌을 위시한 사회 기득권의 탐욕은 엄청 치밀하고 집요하다.

야비하고 흉포하다.

전 정권때부터 모든 정부 조직을 맨마킹으로 접수해서 자기 편으로 관리하고 있고..

지금의 저런 패악적 조약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더우기 전 정권에서 만든 것보다 더 불리한 조건으로 완결을 시킨 지금의 정권은..

역사적인 평가가 두려웠던가..

그 흔적조차 지우려고 난리 친.. 전 정권에서 시작한 것을 자기들이 마무리 지었다고..공로(?)를 전 정권에게 양보하는 모습에서..

재벌과 미국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수준이겠구나..짐작케 되었다. 

 

그들의 야비함앞에서는..민족이나 공동체적 덕목은 없다.

뿐이겠는가..최소한의 인간적 양심도 없을 뿐 더러 가축이나 가금에게도 있는 가축적 친밀감도 없다.

속성상..그들은 악귀일 뿐..

오직 탐욕과 수탈의 꼼수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패악질에 대한 민족적 준엄한 심판..

그딴 거 두려워 하지 않는다.

민족이나 공동체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부정한 제도라도..시간이 지나면 그냥 현지 적응 완료..더 이상 문제 삼는 사람이 없음을 그들은 경험에 의해 알고 있다.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가 자신을 수탈하고 노예로 부려 먹어도..거부하지 않는 위대한(?) 민족임을..그들은 안다.

 

우리가 갖는 이런 종류의 분노와 좌절감은..역사적이다.

그 깊이가 깊어서 가늠하기도 어렵다.

다만..분노를 버리고 좌절할 뿐이다.

좌절할 뿐..세상은 원래부터 그다지 정의롭지 못하기 마련이라는..냉소가 더 가깝다.

세상은 불평등하기 마련이라는..자조의 읊조림..허무 의식......

 

 **********

 

지긋지긋한 몇 백년 역사의 고리가 아직 다 끊어지지도 않았는데..

지금 우리는 또 다시 비열한 꼼수의 시스템 세상에  맞닥뜨리게 되나 보다.

몇 백년전으로 모습으로 환원되는 것일 것이다.

한스런 세월로의 회귀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기득권자들은 어리석은 백성을 농락했다.

이데오로기와 제도,규율,풍습등으로 장악하고 백성의 자유와 존엄을 옭죄었다.

백성들은 사육되어지는 노예의 삶이었을 뿐이다.

세금으로 뜯기고 관리들과 소작료로 수탈 당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나라 전체의 산출량이 그러했다면 모를까..

관리들의 부패와 경제 정의가 실종 되어서..분배의 형평이 망가졌으며

당연히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점점 나락으로 빠진다.

부자가 부자되는 것도 있지만..정부나 지방의 관리들도 그 이상의 부자가 되는 사회였다.

 

극심한 양극화..

선순환적인 국가 시스템은..없었다.야만의 세월.

사회 정의는 사라지고..오로지 힘이 쎈놈이 군림하는 저열한 구렁텅이일 뿐이다.

부자들에게 고리의 빚으로 미래를 빼앗기고 그들에게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자신의 존엄과 순결을 빼았겼다..

그러다가 백성들 그들은..먹지 못해 누렇게 몸이 붓다가 죽었다.

야만의 시절을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목숨 끊을 수 없어..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모질게들 살아남았다.

 

이게 우리네 근대사의..요약이다.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피를 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다.

 

최고 능력자가 온갖 경쟁자를 제치고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왕이라는 위치다.

당연히 왕은 능력있는 슈퍼스타가 되기 마련이다.

그는 그의 능력만큼 대접받으며 군림하고..백성에게는 최소한 이상의 안전과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그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상호 존재 이유이며 거래 논리이다.

제 아비 빽으로 그냥 왕이 된 찌질이는 제거되어야 맞다. 

허울뿐인 왕과 그 시스템에 편승하는 저급한 주접 기득권자들을 쫓아냈어야 하는데..

세뇌와 여린 심성 때문에..백성들은 그 짓도 못했다.

그것도 못했으니..그럼 스스로 죽어야 한다.더 이상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했을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냥 죽어나갔을 뿐..혼자 참고 말았다.

참지 말고..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를 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의와 도덕율의 기개가 존재케 된다.

어떻게든 그런 야만과의 단절의 예식를 치뤄햐 했는데..그렇지 못했다.

좌절과 냉소와 허무 속에 들어앉아서..따져 묻기 보다는 모른체 외면하고 잊어 주게 되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한(恨)만을 키우고 살았다.

 

 

불의를 용서한 댓가가 지금 보이는 세상의 뒷면 아니 본질 아니겠는가.

민족과 정의의 이름으로..

스스로 역사를 평가하고 불의를 처단하는..

역사적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속을 휘젓고 있다.

 

******

 

조선시대 관리들 봉급이 얼마였을까.

시대별로 차이가 있지만..

되게 짰다.특히 조선 후기가 유별나게 작다.

 

최고위직 정1품 정승의  월급..

쌀(80킬로) 4가마  콩 12말..

요즘 시세로 환산한다면..쌀 80만원..콩 50만원어치 = 합계 130만원

정승의 봉급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130만원을 월급으로 받아서 요즘 시장에 나가서 살 수 있는 것이 쌀4가마 콩12말이라는 뜻이다.

 

최고위직이 그러니..최하위직은 그에 20%도 안될테고..

중앙관청 최하위직 종9품은 요즘 돈으로 25만원쯤을 월급으로 가져갔다.

쌀 1가마 값 조금 더 되는 돈이다.

나 어렸을 적 우리집 6식구는 한 달에 쌀 한 가마 이상을 소비했다.꼭 그만큼이 월급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그들은..쌀만 있고..기본적인 생활비와 부식비 비용은 없는 셈이다.

왠만해서는 더 많은 부양가족일텐데..먹고 살 수 없는 수준이다.

그게..조선시대 때 관리들이 질할발광 부패하기 이를데 없었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지방의 하위직 공무원은 아예 월급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전이라는 위치는 월급이 없었다.무급봉사? 봉사?

그런데..가장이 하루종일 고을 살림에 몰입하는데..월급을 안 주면 뭘로 먹고 사나..

그게 무슨 뜻인가.

나라에는 돈이 없으니..네가 알아서 삥 뜯어서 먹고 사세요..하는 뜻 아닌가.

 

그럼..

일반 백성들은 어땠을까.

관리들 봉급도 제대로 못준다는 것은..백성들을 등 쳐먹으라고 하고 돌아서서 방조하는 꼴이다.

그건 이미 나라도 아니다.찌질한 깡패일 뿐이다.

'백성 너희들을 먹여 살리고 보호해 줄 능력은 안되지만..나는 너희들을 죽여버릴 능력은 있어.'

깡패들이 써 먹던 논리..저열한 깡패들과 똘마니들이 흔히 쓰는 말투와 같다.

주먹 쎈 깡패도 아니고..다른 나라 놈들에게 맨날 맞고 다니는 주제에..

연약한 사람들이나 노약자 장애자들에게 군림해서는 호령하는 저열한 깡패새끼들..

 

청백리로 인정받는 몇 안되는 사람들 빼고는..

저런 박봉에도 대부분 정부 지방 관리들이 부자가 되었다는..기가 막힌 역사를 우리는 되풀이 하고 있다.

청백리 이야기 나와서 말인데..요새도 그런 포상이 있는지 모르지만..

메이저 찌라시 신문이 매년 청백리 공무원을 선발해서 얼굴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실어주고 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거..뇌물을 많이 써야 선발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공무원 사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경상도나 전라도 쪽 시골에 가면 아직도..과거 급제에 대한 사람들의 선망 의식에 놀란 적이 있다.

과거시험이 인생의 최대 목표로 인식하는 경향에 놀라기는 했지만..

시골의 의식이라기 보다는..그게 이 나라 전체의 현명한 의식이겠지.

지금도 유효하며 다른 대안도 없는 유일한 모범 양식이겠지.

법조문 딸딸 외워서 고시 패스하면 만사 형통..철밥통..권력자 또는 수탈의 찌꺼기라도 얻어 먹을 수 있는 위치를 가질 수 있으니까. 

옛날부터 선망되었고 지금도 유효한 그 출세 방향..

그게 아직도 세상을 지배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데오로기다.

 

나랏 일 한단다..나랏 일은..개뿔이나..

조선시대 관리들이 그랬듯이..없이 사는 백성들 등쳐 먹는 게 제일 편하고 좋다는..속 뜻의 역사적 믿음이다.

세상은 꼭 정의롭지는 않아 --> 꼭 정의로울 필요는 없어 ---> 정의롭지 않다고 해서 욕 먹을 일도 없으니 --->나만 아니면 돼!!!

수탈 당하지 말고 수탈하는 사람이 되거라..그것만이 선(善)이며 정의인 것을..그렇게 외치고 사는 세상 아닌가.

 

정의가 없는 사회이니..죄의식도 없는 게 맞다.

정의가 없고 죄의식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따로 없다.

[소위 능력자]와 [이른바 무능력자]만 있을 뿐이다.

뭐 새삼스럽지도 않다.

아직도..야만의 시대 아닌가.

 

절망하면서..

파멸의 그림자가 다가옴을 느낀다.

 

******

 

나는 요즘 아이들의 발랄함과 의연함을 보면..참 보기 좋다.

싹아지가 없으셔서 가끔 못마땅하기는 하지만..그 보다는 그네들의 밝고 씩씩함이 훨씬 더 좋다.

조상의 더러운 유산을 거부한 당당한 인격체들이라는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내 또래의 못난 면을 닮지 않아서 고마운..그런 마음이다.

 

우리때야 어디 상상할 수나 있었나.

우리는..부모님 세대의 한을 물려받지는 않았지만..그 어둑한 분위기는 물려받았나 보다.

그 한스러운 분위기를 떨쳐내지 못하고..괜히 주저하고 주눅들어 살았으니..참 바보같았다고나 할까.

 

끌어오르는 오열을 누르고 소리죽여 흐느끼는 우리 어머니의 우는 모습에서..

나는 한(恨)을 봤다.

오토매틱 슬픔이랄까..끊이질 않고 지속되며 무당의 방언처럼 낯선 음절이 반복된다.

한 번 터지면 쉽게 잦아들지 않을 만큼 길고 깊은..억제되었으면서도 익숙한 슬픔의 발현이다.

지금도 가슴 아프고 생경한 그 때의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슬픔의 표출에서 한을 느꼈다.

 

탐욕의 기득권의 흐름은 오래전에 시작해서..

아직도 대명천지 지금까지 유유히 흘러오고 있는데..

한(恨)을 우리네 정통적 정서의 아름다움 쯤으로 뒤집어 씌우려는 경향을 반대한다.

역사는 뒤풀이 된다는 말도..반대한다.

 

나는 요즘 아이들이 커서..

우리 어머니와 같은 울음을 울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돈데보이라는 애절한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나라 경제가 망가진 멕시코의 어느 젊은이가..

희망이라고는 없는 멕시코땅을 버리고..

불법취업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미국 국경을 몰래 넘으면서 부르는 슬픈 노래다.

외국자본과 자국내 재벌들이 독식한 국내 산업과 기반시설들..일자리도 희망도 없어서 떠나는 밀입국의 길..

쉬지 않고 일해야 할 것이며 사회적으로 핍박받거나 경찰에 쫓겨 다닐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보다는 낫기 때문에 미국으로 몰래 넘어간다....

 

작년도 세계 제일 부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나의 동갑내기 슈퍼스타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가 아니다.

세게에서 제일 부자는..멕시코인이다.

카를로스 ** 라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멕시코내 유통 건설 금융을 휘어잡고 있고..남미쪽 이동통신회사를 갖고 있는 모양이다.

 

일반 국민은 난민같은 삶을 살기도 하지만..세계에서 제일 부자도 사는 곳..

극단이 가능하다는 것은 나쁜 사회라는 반증이다.

 

지금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핍박받지 않기를..누구를 지배하고 군림하지 않기를..바란다.

착하게 살면서 자신보다 못한 이를 위해 애쓰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정의로움에 대한 믿음이 전체적으로 확산되어서..신뢰 속에 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용감히 싸울 것을..기원한다.

 

공공서비스가..그 누구의 돈 벌이로 변해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가지 않기를..

아이들 모두 의료 혜택을 골고루 차별없기를..

일자리가 없어서..방황하지 않기를..

 

나처럼..정의를 이야기하다가 좌절과 냉소와 허무로 포기하지 않기를..

서로의 믿음이 깨져서 원망하며 떠나게 되는 나라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별안간 추워진 이 밤에..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과 생명들이..좀 더 나아졌으면.......

 

 

 

 

 

 

 

#2

한(恨)과 쿨(cool)

 

 

한(恨)을 품고 살았던 선조들..

 

억울하고 원통하고 화나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품고 삭히는 슬픔의 응어리..

죽어서 귀신이 되어 한을 품고 돌아오는 일은 있어도..

살아서 복수하고 응징하지 않는 정서..

오히려 익살과 해학으로 순치시킨다던가.참 순한 민족이다.

슬픔을 가슴 속에 품고 녹혀 삭히는 멜팅 포트를 하나씩 탑재하고 살았단다.

 

잔인한 세월을 살아 온 사회적 약자들..

낮은 신분의 사람이나 여자들은 항상 억울한 대우를 받아 왔고..

억울하고 원통함을 운명적으로 순종적으로 삭히며 살았던 인고의 세월들..

다 삭히지 못한 울혈이  모여 또 쌓이고..

삭히면서 배운 절망감과 상처의 흔적이 또 쌓이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갈망..

그게..

한(恨)이라는 우리나라만의 역사적인 정서라는 데......

 

단지 몇 사람만 갖게 되는 신드롬 수준 이상의 사회적 병리 현상..

그런 현상은..태평성대에는 발생치 않는다.

야비하고 잔인한 야만의 시대에만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는 몇 백년 야만의 시대를 살아왔고..

지금도 그 역사를 이어가고자 하고 있다.

한(恨)이라는 의식은..그래서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것이다. 

단절되어야 마땅하지만..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이 맞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억울하고 원통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겠지.지속적으로.

그러나..그들은 선조들이 그랬듯이..

또 속으로 삭힐 것이다.

 

부당함과 억울함과 적개심과 증오로 마음 들끓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미움과 증오를 버려야 하겠지.

미움과 증오의 마음은..스스로의 오장육부를 망쳐서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

우리 몸의 구조는 불가사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음에 따라서 몸이 건강하게도 변하고 병이 생기게도 되었있다는 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다른 형태로 승화시켜야 하겠지.

혼자 끙끙 앓고 토하고 삭히고 해서..

결국 한(恨)을 만들겠지..

살아남기 위해서.....

 

*********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일상의 삶이 그렇게  기가막히게 잔인하게 지속되는 경우가 또 있었다.

우리가 한 을 만들었다면..

그들은 쿨(cool)을 만들었다.아프리카 민족이다. 

 

짐승처럼 포획되어서 멀리 노예로 팔려가는 일상..

포획된 사냥감처럼 옆에서 죽어나가는 가족..

분노와 증오심으로 환장해야 맞는 데..살아남은 자는 살아야 하겠기에..

약한 그들은 망각을 차용했고 용서를 배웠다.

분노와 증오심이 극심하면 미쳐 죽거나 장기가 썪어 버린다.

살기 위해서..그들은 쿨(cool)을 체질화 했다.

세상은 원래 그래...

그러니 잊어 주자...

 

아프리카 부족의 의식..

살인 사건에 대한 형 집행의식이다.

그 범인은 아이를 살인했다.
그 아이 아버지가 범인 처단의 현장에 와  있다. 
슬픔과 증오의..아이 아버지..

마을 청년들이..살인 범인의 손과 발을 묶는다.
무거운 돌맹이를 밧줄로 엮어서 발에 매단다.
그리고..살인자를 깊은 강물에 던져 빠트린다.
꼬르르륵..
살인자는 곧 익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의식의 다음 단계가 황당하다.
죽은 아이 아버지가 칼을 물고 헤엄쳐 들어가..살인자의 발에 묶은 밧줄을 끊어버리고는..
죽어가는 살인자를 살려서 데리고 나온다.그리고 통곡한다.
그렇게 의식이 끝난다.
 
이게 무슨 뜻일까..

어느 한 사람이 연극 시나리오를 써서 공연한 일회성 연극이 아니고..

오랜 전통의 의식이라는 데.....


피해자 가족의 마음을 헤아려..죽여버리는 모습을 리허설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살아있는 가족들은 남은 평생을 원한과 괴로움으로 파멸되기 마련이므로..차라리 용서(적극적인)해서..원한의 인연을 끊어주는 씻김 굿의 의미일까.
그러니까 앗쌀하게..죽이고 싶은 놈을 자기 스스로 헤엄쳐 살려내고는..통곡하며 슬픈 상황을 수락한다는 의미..
자신은 억울하지만..

세상은 이치에 딱 맞게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며..또 다른 날들을 영위해야 하는 숙명을 감수하는 의미..
 
형벌이라는 게 원래 응징의 뜻도 있고..
재발 방지를 위해 두려운 경각심을 널리 알리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 이후 공적인 응징 절차가 어찌 되는 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그건 논외로 두고......

 

다만..이 의식의 속뜻은 살아남아서 슬퍼하거나 증오심으로 자기파괴적인 여생을 살 피해자 가족을 배려한 것일 것이다라는 것이고..

쿨을 체질화한 그네들다운 의식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저 생각 깊은 의식을 치루는 민족인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끌려다니며
억울함과 울분을 자기파괴의 순서를 거치지 않고 승화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물보다 더 학대 받으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초연함..
그 철학의 키워드를 가리켜..영어로 쿨(cool)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아프리카 그들의 언어로는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

 

그러나..

본래의 사연은..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거나 왜곡되기 일쑤다.

세상은 원래 그렇단다.

 

한(恨)은..

우리네 전통적 정서이며 은근한 아름다움의 한 종류로 덧쒸워지려고 한다.

사악한 기득권자들에 대응한 민초들의 생존논리가..은근한 아름다움?

 

cool 은..

가해자들의 후손들에 의해 good 으로 바뀌었다. so cool..한다. so good..의 뜻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나라에서는..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든지 촐랑대지 않고 의연하게 수용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모양이고......

세상은 꼭 정의롭지만은 않다고 하니..그러려니 한다.

세상은 원래 그러니까....

 

다만..이 나라나 저 나라나..

힘센자들의 야만적 탐욕이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일은 더 이상 없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놈이 만들어질 수 없는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이 먼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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