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쉽지 않다(2)
('02./ 9/15)
남녀의 사랑은 왜 영원하지 않을까....
사랑,결혼이 영원하지 않으며 그다지 길지도 않으며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는 것은 이렇듯 논리의 개념이 아니고 본능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서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한계도 인식해야 하겠구요.
그다지 녹녹하게 볼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가깝게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실패의 역사였습니다.
평생을 나 하나만 생각하는,이기적인 관점으로 살아 왔습니다.
이 싯점에 내 욕심이 아닌 성숙한 인격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도 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싫었고..나에게 맞추기를 강요했고..소유하려고 했으며..
그러다가 절망하고 화를 낸 기억들 몇개가 생각이 납니다.
맨 처음의 열정은 과연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나중에 시들해짐을 의아하게 생각했드랬습니다.
사랑은 감정의 끌림이라기 보다는 기술이라는데..
사랑하다가 싫어지는 것은 배반의 의미인데..의리의 문제인데..그것은 사회 통념으로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인데....
도덕률 개념에서 나는 나를 지극히 도덕적이다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과 다른 무엇이 나의 본성을 통제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배반의 경험이 있지만..그냥..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싶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사례들만을 알고 있는데..어떻게 영원히 아름다운 사랑과 결혼을 꿈 꾸겠는가..하는 위기감이 있음도 인정합니다.
유예되어져 있는 마당지만 미리 준비하고 연구해 두어야 하는 영원한 숙제 정도가 될 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사안이라서 어떤 결론 비슷한 것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그냥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기회일 뿐으로 이야기 해 봅니다.
[일부일처 제도로 살아가는 인간 본성의 딜레마]
옛날 우리 부모 이전의 세대 때의 모습을 상징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들어가니까..건전노래 붐에 맞춰 각국의 민요랄까 가벼운 가곡이랄까 그런 것들을 실은 포켓북을 하나씩 주더라구요.
나중에 그것은 우리 어머니의 애창 노래집이 되었구요.
중얼중얼 작은 소리로 몇개의 노래를 읊으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닳고닳아서 나중에는 너덜너덜..옷에 넣고 빨았는지 물에 뿔고 해질대로 해진 노래책이 생각이 나는군요.
각설합니다..
거기에 나오는 노래 가사를 듣고 몹시 불편하고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었지요.
한 마을에 살던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사랑을 했었는데..서로 통하지 못하고 마음 뿐이었답니다.그러다가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답니다.결혼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고..마음은 돌리지 못하면서..겉으로는 아닌 척 했답니다.요기서 노래 끝입니다.
불편하고 안타까운 이유 중에는..
두사람의 못이룬 사랑이 그러했고
그런 마음으로 결혼했다면 괜히 애꿎게 결혼한 배우자들이 불쌍해서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지어낸 노래말이지만..예전에는 그것과 뭐 크게 다를 것이 없을 듯해서 말을 꺼내 봅니다.
예전에 갑돌이와 갑순이는 그렇게 평생 아무 말 않하고 그냥 고운 추억이라고 생각하고..애 많이 낳고 잘 살았겠지요.
결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고 삶 그 자체였으니까요.살고 죽는 문제였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당연히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은 고려의 대상에서 우선 순위가 많이 뒤로 밀리는 항목이었을테고.
그러다가 요즘 들어서는 세상이 좀 바뀌게 됩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너무 불쌍하다..비인간적이다라는 관점이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만든지 지금부터 한 10여년 됐지 싶은데....
메릴스트립,크린트이스트우드가 나오구요.
평범한 시골 아낙네인 메릴스트립이 어느날 우연히 크린트이스트우드를 만나게 되고 바람을 피우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꽤나 까다로운 화두를 하나 제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명칭으로는 불륜이라는 화두인데..좀 깊이 파고 들면서 점차 한 여인의 사랑이라는 관점으로 촛점을 이동하지요.
그녀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녀를 동정하며..과연 나는,내 배우자는 어떨 것인가하는 시각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이 문명의 제도하에 순응하고는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 닥쳐오는 혼외 사랑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고 있지요.
결혼이라는 약속은 당연히 지켜지고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 약속 못지 않게 한 인간의 감정도 존중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도발적 의문을 제기하며 따져 들고 있습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은..주인공으로 하여금 감쪽같이 속이고 결혼생활을 유지함으로써 인습과 현실생활에 대한 성실성을 보여 주려고 의도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혼자 몰래 혼외사랑을 불태우는 이중생활을 하게 하고는..주인공에게 양자 택일을 하도록 하지 않았지요.
그 이야기를 만든 사람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살았던 세상과 같은 분위기였고..
그냥 팔자라고 운명적으로 순응하면서 지내지 않고 자신의 감정적 욕구를 따랐다는 면만 바뀐 셈이지요.
문제만 제기하는 의미..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라는 결론 밖에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존중하고 결혼 생활을 인정하며 가정에 성실한 여인의..외간남자에 대한 죽음을 뛰어넘는 열정..
보통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을 함께 같이 도모하기에는 심히 어려운,다소 비현실적인 스토리를 만든 것이 그것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 인간(주로 여자들..)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하는 쪽으로 미진한 결론을 내리며 끝을 내고 있지요.
그런 절절함이라면..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습으로서의 결혼이라는 약속도 중요하지만 그 약속의 해체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반문하고 있습니다.별다른 대책은 없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러했듯이..예전에는 한 사람의 영혼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전혀 생각치 않았습니다.
자신을 불문률과 사회시스템 속에 그냥 아무렇지 않게 순응할 수도 있었던 집단주의 의식만이 있었지요.
배반이나 다른 생각은 죽어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비장하게 다짐하면서..과거의 그녀(?)들은 삶을 마감했지요.
'내 팔자는..이렇게 사는 거야' 되뇌이며 자신을 부정하고 운명론자가 되어 순응하는 수준에서 끝을 냈지만..
그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0여년전에 영화를 만든 미국애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듯이 한낱 국외자인 저도 또한 대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부일처 제도,한번 결혼하기'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좋은,아니 가장 덜 골치 아픈 제도라는 점일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것을 부정하려는 사람은 없지 싶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혼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고 봐 주기로 하고.
그런 원칙하에서는 모든 인간 본성,욕구들은 그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적당히 중간을 취할 수 있는 입장도 찾을 수 없는 노릇이고..
그냥 단순하게 딜레마만 남습니다.
이즈음에..
간통죄를 폐지할 수 밖에 없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우리나라,대만,인도(?)에만 있는 법이라는..법철학의 개념보다는 인습의 영향을 더 받는 지역에만 존재하는,한 마디로 법의 정신에 맞지 않는 법이라는 논리인 것 같습니다.
서구의 법 개념을 대부분 수용합니다만..그 법 정신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권리(육체적,정신적)를 천부인권,즉 하늘로 부터 부여 받은 해칠 수 없는 권리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랍니다.
좀 햇갈립니다.
사회적 개인적 약속의 의미와 그것을 배신한 사람의 정신 욕구가 서로 상충할 때의 문제.
그 변절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사회가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홰절에 대해 법으로 처벌을 규정하는 일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하는 시각인가 봅니다.
그러니 그 변절된 욕구도 인정하는 셈이라는 이야기지요.
잘 잘못을 따지는 개념에서는 잘못이라고 인정을 하지만 처벌을 내리기에는 그것이 너무 일반적인 인간의 욕구..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는 어느 것이 옳고 나쁘다는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너무 어렵다라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나 결혼 제도와 순결에 대한 무조건적인 요구에 그 맹점이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간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는지요.
아마 일반적인 이야기일 겁니다만 보통사람들은 섹스적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대개가 배우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상황을 상상하며 혼자 은밀하게 짜릿해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어떤 부부들은 그것을 서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구요.
좀 그 구분이 희미해지지요?
간음하는 실제행위는 처벌을 받고 그럴 생각만 하는 것은 상호 인정하는 단계라고 한다면..순결의 기준점이 어디부터인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 이외에도 많은 은밀한 욕구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람피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로 하나 더 이야기 해야겠군요.
마누라와 원만한 부부생활을 위해서 어린 애인을 키운다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자랑하듯 강변하는 그 사나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우리의 결혼 관계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하는 깊은 회의를 느꼈다는 이야기지요.
해외출장 때도 데리고 다니고..뭐 그런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집에 있는 아내와의 의무방어전(좀 된 남자들은 그렇게 부릅니다)을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다고 하던가요.
그 변명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를 제대로 치르려면 섹스적 환상이 있어야 하고..그 환상은 자신의 나이 어린 애인과의 관계 회상이 그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껍데기의 관계..
그렇다고 합니다.
아내와 사랑을 하기 위해서..어린 애인을 상상해야 하는..
허울의 관계....
이미 이 시대의 많은 결혼 관계는 이지러질 때로 이지러졌습니다.
그렇지 않고 양호한 관계도 꽤 많겠습니다만.. 아마도 타부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 일 겁니다.
바람 피우고 몰래 혼외 정사하는 것은 좀 옛날 방식이고..
피관음증(?)이니 스왑이니..엄청난 일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인지..너무 음습한 이야기만 골라하는 것은 아닌지..
어렵습니다.
[남녀사랑이란 과연 고매한 정신적인 행위인가]
맨처음 만나서 사랑한다는 것은 한 인간의 생애에서는 엄청 심각하고 운명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게 됩니다.
영혼의 결합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기에도 주저하지 않습니다.물론 책임지는 일은 없습니다만.
사랑해서 결혼했는 데..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이 없어졌고 나중에는 갈등이나 증오의 관계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결혼신고와 이혼신고의 비율이 모르긴 해도 100:15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격세지감이 듭니다.
저 이혼했을때는..그 조직에 이혼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실제로 없는지..쉬쉬해서 몰랐는지는 몰라도.
그 정도로 희한한 일이었지요.
이혼이라는 난리를 겪지 않았다하더라도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가요.
옛날의 열병은 그냥 그런 적이 있었던 먼 기억 쯤으로 어색할 뿐 무덤덤한 관계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무덤덤한 관계라면 모르긴 몰라도 대충 모범적인 모델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갈등과 증오,멸시의 관계만 아니라면..오히려 대충 성공한 경우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그만하다면 다행스런 일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한 일일 것이고 의문을 제기한 분들도 있을 주제..
왜 대부분의 남녀의 사랑은 평생 지속되지 않을까.
그 당시의 그 열병을 생생히 기억을 하면서도 멀뚱멀뚱 그런 적이 있었다는 기억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왜 그때는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막연함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곤란해 하지요.
저 아래에 이미 올렸던 글의 내용중 일부를 빌려와 본다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듯이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이 그다지 정신적인 행위랄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지요.
새로운 이성을 신선하게 느끼는 기간(약3년)동안 분비되는 홀몬의 작용이지 더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를 반 쯤은 믿게 됩니다.
어떤 정신분석학자가 이야기대로..
사람의 정신 내면에는 자신이 배우자로 사랑할 이상적이 이성상이 준비되어 있게 되는데..
그 모델은 인성이 발달 과정에서 봐 왔던 여인을 알게 모르게 모델로 삼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딱 그런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이라는 모델에 또 다른 나름대로의 환상이 곁들여지게 되구요.
당연히 자기 마음 속에 준비된 이성상에 근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끌리게 되고 사랑한다라고 표현하게 되는것이라는 거지요.
이상형이라고 하던가요?
우리가 사랑이라 믿는 것이 알고 보면 대부분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모델을 밖에서 찾아 헤매는 행위라는 겁니다.
현실에 없는 이상형이라는 환상은 끝내 깨지게 마련..
그래서 상대방을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여겼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사랑의 열정은 급속도로 식어 버리게 된다고 하는군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환상을 품고 '나만의 그'를 만들어 좋아하다가 '알고 보니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며 실망하는 식으로 결말이 난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도 신빙성이 있어 뵙니다.
이렇듯..사랑이라는 것이 잠깐 헷갈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믿게 되기도 하고
생식 본능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라는 고전적인 주장도 익히 들어 봤고
홀몬 분비의 영향이라는 유물론적인 이야기도 솔깃하기도 합니다.
더욱 치사한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젊어서 서로 사이 좋고 늙어서까지 해로하고 서로 다정하게 잉꼬부부로 늙는 노인분들이 있습니다만..
그 부분마저도 양자가 서로 의처증 의부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폄하하는 요사스런 학설도 떠돌아 다닙니다.
사랑이 아니고 병적 집착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심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그러면서 서로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잉꼬부부라는 평가를 받게 되지만
두 사람의 속내는 지독하게 거북하고,한 마디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왜 그런 설들이 많을까요?
앞에 이야기처럼..남녀의 사랑은 대부분 영원하지도 그다지 길지도 않은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고 있다는 이유이고
왜 그렇게 인간의 감정을 혼란스럽고 덜 정신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놨을까 그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의 몸과 기본 성질을 창조하신 조물주의 뜻을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알아내면서 참으로 오묘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이 경우는 영 잘못 만들어 놓으신 것 같아서..
참으로 얄궂은 모양새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구조적 언배란스]
'쿨리지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고 합니다.모르겠습니다.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지.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이야기인데..그럴 듯해서 옮겨 놓습니다.그대로.
쿨리지 효과..미국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의 일화에서 유래된 용어다. 쿨리지 대통령은 부인과 어느 주지사의 농장을 방문하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닭장을 살펴보고 있던 부인이 농부에게 "수탉들은 하루에 암탉과 몇번 관계를 하나"라고 물었다. 농부는 "10번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부인이 쿨리지 대통령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농부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쿨리지 대통령은 "같은 암탉하고 항상 관계하는가?"라고 물었다. 농부가 "다른 암탉하고 한다"고 대답하자 쿨리지 대통령은 이 이야기를 부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쿨리지 효과는 성행위의 대상이 바뀌지 않았을 때보다 성행위의 대상이 바뀔 경우 성행위의 수준이 높게 유지되는 현상이다. 수탉을 한 마리 암탉과 같이 있게 하면 처음 한시간에 7번의 관계를 한다. 하지만 다른 암탉을 넣어 주면 30분에 11번의 관계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성 심리학자 쿨리지는 4년을 주기로 파트너를 바꾸면 부부관계 횟수가 줄지 않고 부부관계도 권태롭지 않을 것이라는 '4년 주기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전국 도시의 기혼남녀 1,100명을 대상으로 부부만족도를 면접조사한 결과 결혼 5년이 지나면 부부만족도는 급격히 감소한다. 결혼 5년째 아내에 대한 만족은 50%, 남편에 대한 만족은 30%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 특히 부부의 성관계는 부부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쿨리지 효과가 흔히 혼외정사로 나타난다. 40년대 서구에서는 남성의 50%와 여성의 25% 정도가 혼외정사의 경험이 있었는데 현재는 남녀 구분없이 65% 이상이 혼외정사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킨제이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인용 끝납습니다.맨끝에 킨제이 보고서 이야기가 나오던데..한 40-50년 된,그때 꽤나 시끄럽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학설이랍니다.
좀 오래된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덧붙여 봅니다.
이야기가 야시시한 내용입니다만
남녀의 갈등구조가 생리적으로 명확한 실증인 듯해서 인용했습니다.
영혼을 가진 고등생물인 인간.
과학이라는 것은 그런 인간을 하등동물들의 그것과 별로 큰 차이가 없음을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인간 존엄이나 정신적인 긍지를 조금씩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어떤 형태로든 세상은 변해 나가겠지요.
우리나라도 결혼과 육아의 문제를 어려워하는 부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란서스타일이 일반화 될지..제도가 변할지..또 다른 분출구가 생길 지..모르겠습니다만..
점진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 것 입니다.
다만..지금 우리 앞에는 오늘의 우리 현실 제도와 사람들 인식이 있을 뿐이지요.
사조가 어떻게 변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영위해 나갈 결혼생활입니다.
일반적인 추세나 경향이 아닌 나 한사람과 또 한사람과의 관계만 중요합니다.
아무리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늘어 놓지만..
오직..좋은 사람 만나서 서로 깊이 영원히 사랑하는 일..그래서 죽음도 뛰어넘는 영혼의 결합을 꿈 꾸는 것이 지금의 단호한 나의 입장입니다.
어떤 여인과 함께..서로 깊은 이해와 존중으로..현명하게 생각하고 삶을 즐기며 많이 웃고 살아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고 있고
그런 노력을 해야겠지요.
비관적인 사례를 많이 알고 있음에 환상적인 기대로 흥분하기 보다는
신중하게 관계를 유지하며 현실적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에서의
그런 노력을 해야겠지요.
상대의 추억과 꿈을 같이 느끼는 동반자로서의 배우자..같은 편으로서의 의리를 지켜야 하는 배우자..이해하고 공감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하는 친구로서의 배우자..생리적으로 판이하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배우자..
결코 내것이 아닌 독립된 인격으로서 많이 기대하거나 너무 많이 애착을 갖지 말아야 할 배우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그렇게 인정하는 노력이 있어야 겠다는 뜻입니다.
환상이니 이상형이니..현실에 없는 것을 붙들고 늘어지기 보다는..
한 사람의 안스러운 인간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기대할 것이 뭐 있겠는가..
별 뾰족한 수가 없이..길게 늘어놓기만 했지..
끝내..주례사 스타일의 결론이군요.
어렵다는 인식이..그 결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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