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만

모계사회로 가는 과도기 ('02./ 9/14)

산책길에서 2004. 2. 6. 18:37

모계사회로 가는 중간 쯤...
(2002. 9.14)

 


언제부터인지 이 세상의 대부분은 부계사회로 살고 있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이지요.

체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남자들은 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요.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부류입니다.
그래서 침략과 대결, 전쟁이 인류의 역사였습니다.
물론 남자들의 장점도 있지만요....

 

전쟁터에서나 걸맞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평화시에는 좀 적응하기 곤란해 하는 게 남자들 아닐까요.

요즘들어서 많이 순치되고는 있지만..

그런 남자들이 세상의 질서을 만들고..세상의 방침을 이끌어 가고 있는 셈입니다.

상대적으로 여인네 삶은

참으로 비참했지요.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의 우리나라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은 사람으로 살았다기 보다도 남성들의 도구로 살았지 않나 싶습니다.

조선 말기에,시집가기 전에 소대신 쟁기를 끄는 댕기머리 여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아버지인가 하는 사람이 뒤에서 쟁기를 조정하고.
한 세기 전에 있었던 그런 모습에서 이제 더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그 과도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40대 세대가 과도기를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꽤나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혁명적인 경제의 변화를 몸소 겪어 내고 있고 있는 부분과

아무래도 모계사회로 넘어 가는 과도기를 살고 있는 것 같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먹고 살기가 너무 빠뜻한 어린 시절을 겪었지만 이제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품위있게 살아갈 것인가가 주요현안인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배 세대(50대 60대 그 윗대)의 고생과 업적을 우리세대와 다음세대에서 고스란히 향유하고 있는 중일 겁니다.
우리세대도 얼추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선배들은 고생만 죽도록 하고 막상 자신의 희생의 댓가를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가난의 습관대로 평생을 살았고 늙으신 분들이라고 봐야지요.


60-70년대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은 우리의 언니 누나들이었지요.
가발공장에서 시작해서 방직공장,봉제공장,납땜공장에서 교대근무로 야근하고 사람가득 실은 버스에 매달려 가던 어린 여자들.


나라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는 최초의 몫돈을 마련하는데에 그녀들의 노동력이 1등공신이었지요.
가발,직물 수출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60년대..봉제제품,조립 전자제품등 여성 인력이 70년대까지 중요한 원천이 되었어요.
부존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으며 내수 시장도 형성될 수 없었던 어떻게 옴작달삭할 수 없었던 시장 경제..어디서 활로를 찾을 수 있었겠어요.
싼 노동력 밖에 없었지요.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서독에 파견할 광부를 모집하던 때가 그 시절이었어요.
아마 그 시기에는 필리핀을 동경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도 필리핀을 따라 잡자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망하고 나서 미군들에게 여인들이 몸을 팔아서 나라의 국부의 근간을 세우고 우리나라 6.25때 미군의 병참기지로서 이익을 챙겨 지금의 부유함을 일구었듯이
우리의 씩씩한 어린 여자들은 구로공단,마산수출자유지구에서 얼굴이 노래질 정도로 일을 했지요.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여인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그들을 공순이 짤순이로 업수히 여기면서 매도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착하기만 했던 그녀들은 대부분 비장한 꿈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어요.
잔업을 마다않고 통장의 불어나는 돈을 보며 기뻐했던 그녀들의 꿈은

고향의 부모에게 작은 밭뙈기 논마지기를 사드려서 자신이 겪었던 그 지긋지긋한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꿈이었지요.
거의 비슷했어요.모두 자기 희생적인 여자 아이였습니다.
자신은 국민학교밖에 공부하지 못했지만

집에 있는 동생들을 서울의 좋은 대학교에를 보내서 공부하게 하고 돕고 싶었던 갸륵한 정신이 있었어요.


그 당신 사진을 보셨는지 모르겠군요.출퇴근시간이 되면 구름처럼 몰려가는 어린 여자들의 무리를 보신 적이 있는지요.
멋 부리는 요즘 여자들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회사에서 지급한 곤색 까운을 입고 있거나 아무렇게나 줏어입은듯한 쉐타는 너무 오래 입어서 몸에 꽉 끼어 작았지요.
요즘에 자신의 몸뚱아리를 섹시하게 들어나게 하기 위해서 입는 배꼽티가 있지만 그당시의 작은 스웨터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돈을 쓰지 않는 어린 여자들의 숭고함과 희생정신이 깊게 묻어 있는 슬픔의 옷입니다.


지금 우리 40대들은 그들의 동생정도 되는 세대들일 겁니다.
고생 직사하게 했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여기서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이야기로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설과 추석에 그녀들이 집에 사가지고 가는 물건들이 무엇이었을까요?
회사에서 일괄 지급한 식용유세트,비누세트가 들려 있고 부모님 돕바,동생들 옷가지,집안 세간물품...
그 이전에는 설탕가루도 그녀들의 귀향 선물이었지요.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명절 귀성전쟁은 사실 그때의 향수에 다름 아닙니다.
1년에 두번밖에 가질 못하는 고향..그래서 끌어안고 울고불고 하였던 것이고..어린 여자들의 다정한 감수성이 전체 사회분위기로 고착하고 전통이 되어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하여튼..
여자들의 그 희생을 그 바탕하에서 그 후 중동건설 붐,베트남 파병 특수로 남자들이 나서서 달러를 만들어 왔어요.
그 이후부터 자동차를 사고 푸주간에 가서 쇠고기 좀 끊어다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내수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경제의 틀이 마련된 것이지요.

나라 경제가 운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여자들의 눈물겨운 노동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일련의 단계를 몸소 경험하고 오늘에 와 있는 우리는 옛날 경험도 알고 있고 요즘 아이들의 부티나는 행동도 가까이서 보고 있는 중간자의 입장일 겁니다.

 

우리나라 여인들의 강한 생명력과 위상의 변화를 이야기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누님들의 희생이 가엾어서 좀 흥분했나 봅니다.
여자들의 그 강한 생명력이 바탕이 되어서 그 후에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스템과 사조를 만들게 되기도 합니다.
사회시스템으로는 아직 그답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가정에서만은 여권신장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그 이전에는 어땠나요?
내 어릴 때 동네에 돈푼께나 있는 집은 첩살림을 하는 사람이 제법 됐어요.
여자들은 얌전하고 조용하게 내조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첩이나 들이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가정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어머니들 세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대부분 그런 분들이었을 겁니다.
어릴 때 본 동네 아줌마들도 다들 그렇게 얌전한 사람들이었어요.
우리의 누나들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여자들의 그런 수동적이고 바보같던 모습이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하는데..
그게 어떤 동기가 있었겠지요.
아주 오랜동안 제도나 인습으로 여자들의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억눌러 왔던 우리사회가 요즘같이 바뀐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남성 본위의 사회에서 여성 동등의 사회로 바뀌게 된 것은 분명 우리가 10대 20대 30대를 살아오면서 바뀌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 경험으로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내 어렸을 때는 여성들은 그냥 죽어 지내야 했던 것을 봤으니까요.

당연히 그리 되어야 하겠습니다만..
아직도 남성 중심의 잔재가 많은 여성들의 목을 죄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멀지 않은 과거부터 여성은 남자들과 동등한 입장이 되고 있고 일부 가정에서는 여성의 파워가 더 세다는 증거들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바뀌어 온 20~30년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렇게 될만한 법적인 사건도 국민적 캠페인도 떠 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 동기는

아무래도..여성이 상대적으로 정보력을 많이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맞아 보입니다.
매스컴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서 정보의 홍수에 살고 있고 상대적으로 여성이 새로운 정보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음이 그 이유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최근 30년 동안 우리나라가 거의 모든 주거문화가 도시화하였다고 봐야 합니다.
60년대 말에 나온 우리나라 홍보 사진집에는 이촌동의 한강맨션아파트가 자랑스럽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몇채 없었을때 이야기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아파트 보급율이 50%를 넘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파트가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설이 그럴 듯한 이야기같습니다.

그 이전에는 세상의 모든 정보가 남성들 사회에서만 흘러 가게 되어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들은..'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가 뭘 알아?'라고 홀대하고 무시할 수 있었겠지요.
그냥 막연하게 우시대기만 하면 알아서 '지가 뭐 아는 게 있는감유' 것이 그 당시의 여인들의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뭐가 뭔지 조금의 정보도 없었기에 남성들의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 권위에 기죽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주거문화가 바뀌면서 1분도 안걸려서

이웃집을 방문할 수 있게 교류와 정보채널의 동선이 단축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정보가 여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게 되었고

그 정보가 남자들이 공유하는 정보보다 고급정보였고 돈이 되는 것이 많았다는 점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삶의 질에 대한 정보가 확산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에 대한 일대 큰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남자들이 직장 다니며 봉급을 타오면 그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먹고 살고 애들 키우는 것 말고는.
누구네는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따따블 벌었다더라..
말죽거리 지역이 유망하다더라..
수지지역에 대단위 단지가 들어서는데 지금 사놓으면 떼돈을 번다더라....


물론 문제가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만..이찌되었던 그 말은 다 사실이 되었고 나중에 들어간 사람도 몇배를 먹고 나오는 경우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인들이 경제 행위가 남자들의 푼돈 경제를 가볍게 휘어잡는 사건들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지요.
남편이 매달 저축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살려면 몇번 죽었다 살아나도 안될 정도라면 그 집을 장만한 아내의 위상은 남편이 떠받들어 모셔야 하겠기에 힘이 세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한 십여년 되었나요..봉급이 통투에 넣어서 지급되지 않고 온라인 입금되게 됨에 따라 그나마 남자들이 한달에 한번 은근히 뽐 낼 기회마저도 없었졌다는 사건도 간과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매스컴의 발달로 온갖 정보가 여인들에게 더 많이 전달되고 있는 것도 큰 몫을 하게 되었겠지요.
정보가 난무하는 세상에 접어들면서 남자들이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다지 양질의 새로운 정보를 얻을 기회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보는 여성들이 더 강하게 되었습니다.
재테크라는 일부 부문을 예를 들었습니다만,여자들이 정보 수집 능력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 향후에도 여성의 앞선 독주가 예상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새는 명절 때 남자들이 처가집에도 다녀가곤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언제인지 모르지만 세태가 엄청 바뀌었어요.
명절때나 무슨 일이 있으면 남자 형제들끼리는 대충 서먹하고 어색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껄끄러운 알력이 있는 것인지..눈치를 살피는 통밥이 분위기를 무겁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그런 경향이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지요.
그것은 여자들의 영향력이 세어서 그렇습니다.
아예 여자들이 전면에 나서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겠습니다만 아직 남자들을 표면적으로나마 자신의 가정에 대장으로 예우를 해야만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일 겁니다.
그러니 서먹하고 걷돌게 되기나 하는 것일 거구요.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 형제들은 다릅니다.
여자 남매들의 동서끼리 만나면 화기애애하게 밤을 새서 먹고 마시고 놉니다.

다음 날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하구요.
제도나 인습은 옛것이지만 우리사회의 구성원의 감성은 이미 새로운 추세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나 보여진다는 뜻이지요.


또한 남성 구룹의 장악력이 쇠퇴하고 오히려 여성들이 전체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뜻으로 봐도 될 것 같구요.
전쟁하고 농사짓고 사냥하는 시대에는 아무래도 체형과 체질상 여성은 남성보다는 열등한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경박단소의 시대,디지털시대,정보가 돈이 되는 시대,단순한 노동보다는 관계를 조율하고 체계를 관리하는 것이 고부가가치인 세상 입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근육보다는 머리가 더 우위에 있는 덕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여성이 갖는 본원적인 특장점이 인정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무 자르듯 단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여성들이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 상에서 서서히 제도와 인습의 하드웨어도 바뀌어 나갈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역사 이전의 시대에는 모계사회의 흔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사자들은 모계사회라고 합니다.
새끼는 어미가 키우고 애비는 남이 되는 경우입니다.
오히려 새끼를 공격하기도 하는.


지금 북한 사투리에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남자들은 가정에 대한 개념 없이 사냥이나 다니고 끼리끼리 어울려 힘 자랑이나
하든가 남성을 뽐내려는 집단의식에 실속을 빼앗기든가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모르긴 해도 모계사회의 흔적이 아닐까 혼자 추측을 해 봤습니다.


만주에 살고 있는 어느 부족은 아직도 모계사회의 풍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티비에 나온 이야기입니다.남편들은 명절 때 애들 엄마나 애들을 보러 가는 상황을 방송한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가서 장모님 뵙고 마누라 보고 아이들 보고 그냥 담담하게 돌아서 오는 모양이었습니다.
남편들은 평소에 어디서 무엇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원시 모계사회로의 회귀는 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이제 모권이 더 강력한 세상이 되겠지요.

 

옛날에 남성 중심의 사회가 된 것에는 남성의 희소성도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전쟁나가서 죽고 먹고 살기 위해서 바다에서 산속에서 정부의 노역 차출등으로 남자가 많이 죽었고 그건 일련의 경향들이 남녀의 성비의 불균형을 낳았어요.
희소한 부류가 더 대우를 받게 됨에 따라 남성이 여성을 몰아부쳐도 별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지요.
그런데 앞으로 10년 후면 남자애들이 10%이상 많아지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때는 확실하게 여성들이 더 강력해진 장악력을 발휘하지 않을까요?

 

모르긴 해도..그래서 세상은 좀 더 화합하고 부드러운 세상이 되겠지요.
남자와 여자는 본원적으로 그 기질이 판이하다는 것은 다 아실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논리적이려하고 분석하려는 기질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좀 안생긴 여자 둘이 오랜만에 만나서는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이따금 봅니다.
더 이뻐졌다고 서로 칭찬하면서 깡충깡충 뜁니다.
별로 맘에 없어도 서로 인정해 주는 기질 탓이리라 보여집니다.
그 옆에 있으면 좀 민망할 때도 있고 우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기는 좋지요.서로 싸우지는 않으니까요.
여자들은 처음 만나서도 잠깐만에 서로 언니 동생하면서 말을 놓고 친근감을 보입니다.
남자들이 보기에 참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남자 끼리 처음 만나는 일이 있다면.. 좀 어정쩡한 관계라면 하루종일 서로 딴청을 부리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여성의 그 다정함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군요.

물론..부정적인 측면들도 많을테구요.
대치동 사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 많이 간다는 소문이 있더니..그 동네 학원이 좋아서 그렇다고..집값이 다락처럼 올라가는 것도 여자들이 가정 경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엄마병'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한 지 꽤 오래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집 아이가 어느 학원 다닌다고 하면 자기아이도 보내고 싶어서 애가 타게 신경이 쓰이는 병이랍니다.

골때리는 그런 이야기까지 모두 망라해야 형평이 맞겠습니다만..
이쯤에서 끝맺음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