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9.19 )
이웃애(愛)..
말 하나 만들었습니다.
인류애에 상대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알고 지내는 이웃이 아니고 전혀 모르는 이웃에 대한 사랑.
오랜만에 테레사수녀님 이야기를 읽다가 건진 화두로 이웃애를 생각해 봅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많은 사람을 받아 안을 기운이 없으니 옆에 있는 한 사람만 끌어 안으신다는 말씀..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 꽤나 많은 사람을 안아 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마치 데레사수녀님과 같은 깊은 사랑을 가졌지만 행동으로 표현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생각해 봄 직한 주제일 겁니다.
저는 평소에..
세상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우리나라 사람 모두 잘 살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아픔과 가난함과 사악함을 제거하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합니다.
데레사수녀님 같은 분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기도 하기도 하고
그런 순수한 사랑이 이 세상에 가득했으면 합니다.
티비에서 불쌍한 아이들 사연을 보고는 안쓰러움에
눈물을 훔치면서 아닌 척하기도 하고..
700- 으로 전화를 하기도 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더 이상
없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 보기도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따뜻한 감동의 이야기를 보고는잔소름이 돋아나며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참 좋은 사람들이고 착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살아 볼 만한 곳이라고 안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내 일상과 이웃에게로 시선이 가까워면
좀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지요.
항상 의심과 질시의 눈으로 내 주위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것이 현실적인 안목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구요.
흔히 길에서 만난 불쌍한 사람에 대해서는 야멸차게 외면하곤 합니다.
안됐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주로 하면서 차가움을 유지 하는 편입니다.
내 이웃에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는 냉정하게 거리감을 가지려고 합니다.
관계 되어지는 것이 싫은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세상사..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데...'하면서....
책 잡히지 않게 적당히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인류에 대한..
의심할 바 없는 사랑은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하지 못하고 있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나 자신이 훌륭하고 좋은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별별 사람 많고..무슨 봉변을 당할 지 몰라..
항상 대비하며 살아야 하는 도시에서의 내 삶.
이른바..인류는 사랑하지만 내 이웃은 거북하다..입니다.
제 어릴때 사진을 보면 너무 순하게 생겼습니다.
사내놈이 맥아리도 없고 생기도 없었고
눈빛에도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 어릴적 사진이 저는 싫었지요.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너무 순하고 착하기만 한 저의 마음을 똘똘하고 당차게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그 염원이 이루어진 것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너무 똘똘해지고 야멸차고 싸가지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어느날 문득 그렇게 변한 저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순하고 착한 본성이 진짜인지..
변하려 했고..어쩔 수 없이 세속에 휩쓸려서 바뀐 이 삭막함이 진짜인지..
두 개 다 진짜인지..
명확한 구분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저는 착하고 여린 저의 모습을 진짜 자신의 본 모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할 겁니다.
저처럼..어려서 흑백논리로 교육을 받았고..
우리편은 좋은 사람..상대편은 나쁜 사람..으로 확신을 갖게 만들었으니까요.
약육강식의 교육에..동화책에서 부터 흑백논리를 체득한 것 까지..
가장 비교육적인 교육을 받은 세대이니까요.
그렇다고..내가 이런 모습인 것을 교육 문제에 떠넘길 수도 없는 일....
이웃에게 좀 더 많은 정을 주지 못하고 베품에 인색한 우리들.
아마도 수줍어하는 성격때문일 수도 있겠고 사람들과
어울어지는 연습이 덜되었기 때문일 수 있겠지요.
본성은 선하고 착하며 선함에 대한 쏠림이 있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있어서 그래서 인류는 사랑하지만..
내 이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아니 행동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봐야지요.
아무래도 진실한 의미에서의 휴머니스트가 아니고
무늬만 흉내 내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경쟁심이 강하기 때문일 수도 있구요.
깨지기 쉽고 여린 자신의 속내를 보호하고 커버하기 위해서
송곳니를 키우고 손톱을 날카롭게 해서 시위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의 깊은 속 심성을 읽을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요.
도시는 항상 전시 비상사태..
이 도시에서 착하고 좋은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어려운 설정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눈치보고 살고 있을 거구요.
이제..문제의 본질이 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너무 두려워하고 있고
너무 겁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심에 항상 몸을 떨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되었던..
그래서 선(善)과 악(惡)이 내 안에 혼재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이와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면 어떤 답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솔직하게 '그렇다'라고 말을 하는 분이 있을 것이고
그냥 겸손하게 '아니오'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만
그런 사람들의 속마음은 사실 말과는 다르다고 보고 싶습니다.
'제 잘 난 맛에 사는 것'이..사람이니까요.
'제 잘 난 맛..'의 요체는 자신의 능력,도덕성,정의로움,
善함에 대한 막연하나마 자신감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마도..
정의로움,우월감,극도의 친근감,피해의식,자기연민 그리고
자신은 선(善)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 善함의 자기확신은 또 다른 사람의 자기확신과
부딛혀서 다툼을 만들기도 하지요.
선한 어떤 사람이 그 자신을 주장할때는
선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자신의 선을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악함을 무기로 하는 경향이 있게 되니까
세상에는 순 도둑놈 강도만 있다고 믿게 되기도 하지요.
그 善함의 확신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욱 공격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善함과 정의로움에 대한 자기 확신이 강할 수록
사람은 악(惡)에 가까워져 간다는 아이러니..
그게 관계에 있어서의 사람들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자신은 정의의 사자(使者)이고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은
惡의 대리인으로 치부하는 일은 관계의 구조상 이미
악행이 된다고 봐야 합니다.
기독교의 이교도 배척의 역사의 영향이 크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선함과 악함은 내 안에 같이 있어서 어떻게 쓰임이 되느야에
따라 천양지차의 모습으로 표현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극악한 사건들 모두 다 '정의'의 이름으로 치러진 행위였지요.
사람의 간사한 마음속에는 선함과 악함이 함께 담겨 있다고 봐야 맞을 겁니다.
몇몇 친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그리고..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웃에게는 다만 경쟁자일 뿐이지요.
어찌되었던..
'인류를 사랑하지만...' 하면서
이기적이고 무한 경쟁으로 살아가는 것은 위선적인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허울이며 껍데기이고 자기기만과 다름 아닐겁니다.
아마 편견과 독선이라는 것도 이런 자기 오해에서 나오는 일일 거구요.
막연하게나마 가졌던,자신이 정의롭고 선하다라는
인식을 버리고 겸손해 져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이 조금은 나이지겠지요.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원만하고 이성적인 관계들이.
두려움과 경쟁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각박함은 더 많은 각박함을 만들게 되겠지요.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해야 하겠습니다.
인류애는 이론이고..껍데기일 뿐일 겁니다.
그냥 알고 있는 것..어려서부터 학습되어진 善함에 대한 강박관념(?)정도....
우리 마음 속에는 데레사수녀님도 있고 못된 사악함도 있다고 봐야지요.
껍데기 인류애를 진짜 사랑인 이웃애로 승화시켜야 되겠구요.
이웃애(愛)는 이론이기 보다는 실제입니다.
많은 사람을 구하는 노력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이고
지금 내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을 모시는 것이 진짜 사랑임을
데레사 수녀님이 이야기 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막연한 인류애의 성향을..
좀 더 구체화하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따뜻함으로 전이되어서 저 처럼 닫힌 마음의 사람들을 조금씩 감화시키는..
그래서 사회시스템에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겠지요.
오늘 많은 분들이 고향 가시겠군요.
고향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하듯이..
직업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리하면 되겠지요.
"상대를 배려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살았더니..바보로 왕따시키더라"
고향에서는 좋은 덕목으로 칭찬받겠지요.
어떤 직업에 종사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던 사람이 하신 이야기입니다.
나부터도..모르는 사람에게도 송곳니와 손톱을 보이지 않게 되고
오히려 따뜻한 안스러움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좋은 계절..추석입니다.
행복한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가시는 길에..
얌체처럼 끼어들기 하고..끼어들기는 죽어도 안시켜주고..혼자 욕하고..
그러지 마시고 편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다녀 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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