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프로페셔날리즘
(2002. 9.18)
중동인지 유럽쪽인지의 속담 중에
"낙타의 등이 부러지는 것은 맨 마지막에 올려놓은 짐 하나 때문이다."
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결과에는 많은 원인이 있지만 맨마지막의 원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인것 같습니다.
그 속담의 뜻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관계없는 화제는 아니구요.
왜 낙타의 등이 부러지느냐하는 문제입니다.
낙타에 대한 인내심과 충성심을 이야기 하려고 그럽니다.
낙타는 사막에서의 운송수단입니다.
낙타의 등에 사람도 타고 엄청 많은 짐도 부리고.
그런데 속담에서처럼..낙타는 등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등에 올려놓은 무게를 견뎌낸다고 합니다.
튼튼한 네 다리에 걸쳐 있는 등뼈..
조물주는..생명이 있는 짐승 모두에게..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감각을 주셨을 거든요.
아파서 못견디도록 만들어 놓으셨을 겁니다.
아프다는 것은..사람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생명 위협에 대한 스스로의 경고 사이렌입니다.
부러져 죽기전에 아파서 못견디겠지요.
당연히..떨구어 내거나 달아나려 할 것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낙타는 그 두려움을 묵묵히 참아 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등뼈가 부러져 죽게 되구요.
왜 그렇게 무디고 모질까요?
원래 태생이 둔해서 그럴까요?
아마..
그건..아주 오랜동안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일겁니다.
짐을 부리는 데에..자기 목숨을 걸도록 해야 한다는..
낙타의 소명의식..
낙타의 프로페셔날리즘이라고 부르고 싶은 데....
뉴질랜드에 가면..
2 마리 양치기개가 3천마리 양을 몰고 다닙니다.
양치기 개들은 양들을 일사분란하게 콘트롤합니다.
양들의 심리도 꿰뚤어 읽고 있는 부분은 사람보다 낫습니다.
가장 완벽하게 일을 하는 방법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소화 해 냅니다.
대단한 프로페숀날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단순화해서 파악하고 있으며
자신의 역할에 대해 죽을 힘을 다해 진지함을 갖습니다.
죽을둥 살둥..자신의 일을 해내고 마는 진지함이
양치기 개의 눈빛에 담겨져 있더군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의 멀뚱한 눈이 아니고..
야생에서나 볼 수 있는 불빛이 튀어나올 것 같은 눈빛입니다.
주인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까..
눈빛이 보통 강아지처럼 순해집니다만..
멀리 시선을 양떼들 쪽으로 돌리면서는 예의 그 눈빛이 되살아 납니다.
말(馬)은 민감한 놈이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동물입니다.
말의 숙명은 달리기 입니다.
사람이 말을 계속 몰아대면..
말은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달리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싯점이 되어 못견디면 쓰러져 죽습니다.
달려야 한다는 인식이 오랜 세대동안 말의 원형질 유전자에 각인이 되어 내려와서인지..
달리라고 하면 죽을 때까지 달립니다.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말이 거부하지 않는다고 해서..계속 박차를 찔러대면..
달리다가 어느 때 쯤 쓰러집니다.
무식한 주인은 말을 죽이게 되기 쉽상입니다.
말은..달리다가 쓰러지면..그것은 곧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식한 주인의 생각으로..힘들어 쓰러졌으니.. 좀 쉬면 회복해서 또 달릴 수 있을거야..가 아니고..
쓰러지면 곧 죽음입니다.
그렇게 태생이 그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죽는 마당에..꾀를 부리거나 반항하는 일은 없습니다.
대단한 진지함입니다.
숙연함까지 느낄 수 있는 소명의식입니다.
걸구같은 아자씨들이 집에서 키우던 개를 끌고 개천으로 갑니다.
차라리 그냥 한번에 꽉 죽일 일이지....
수없는 뭇매를 맞으며 죽임을 당하면서도
개는 때리는 주인놈에게 꼬리를 흔들고 신뢰와 애정을 보냅니다.
개의 꼬리 흔들기는..사람으로 따지면 웃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맞아 죽으면서도..핏발 선 눈이 하얗게 뒤집어 지면서 죽어가면서..
때리는 놈을 보며 애원과 용서를 빌며..꼬리를 흔듭니다.
아니..웃어 줍니다.
인간의 애완에 길들여지고
오랜 세대 이어내려온 충성의 유전인자 때문이겠지요.
별 할 일이나 쓰임은 없는 역할이지만 인간에게 충성과 복종이
그들의 소명이니까 죽음에서도 그 역할을 합니다.
야비한 배반에 대해서도.
그래서 죽도록 맞아도 꼬리를 흔들 수 있나봅니다.
그런 충성심이..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사람만이 나쁘지요.......
각설하구요.....
동물들에게서는 사소한 일상의 생활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진지합니다.
사람에게나 있는 여유로움이나 통박이 그네들에게는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모든 것이 생존의 문제로 직결해서 느끼고 있습니다.
해해 웃어대는 인간의 눈에는 이미 없는..
생존하기 위한 혼신의 눈빛이요..
죽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절박함과 진지함이 그들의 모습입니다.
신비하기 까지한 그 모습에 감탄과 찬사를 보냅니다.
아울러 드리는 말씀..
모든 생명은 존중 받아야 합니다.
동물의 본능이란 것..사람의 그것과 어느정도 유사한 모습이겠지요.
사람의 직업..의무..생활..친교..관계..사람들의 삶 모두가 그 모습이어야 겠지요.
사람도 예전에는 그런 사생결단의 의지가 있었겠지만..
그거 안하면 다른 것 하지 뭐..
하면서 요즘에는 느슨해지고 나태해지나 봅니다.
어영부영하고 우유부단하고 대충대충하고 쉬엄쉬엄하고..진지함이 없습니다.
요즘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양새는 절도있거나 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해야 하는데 뒤로 미루다가 결국 못하고..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해 오던 대로 타성에 젖어 생각없이 살아내기도 하고..
욕심의 꺼풀이 눈을 가려서 빤한 구렁텅이를 감지해 내지 못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과 다른 것이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냥 바보처럼 따라 가기나 하고..
자신을 비하하면서 생기는 왜소감에 낙담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진지함에서 어영부영 도피하려 하고....
자신의 생애에 본능적으로 진지했던 동물들 이야기를 앞에 했습니다.
동물들과 비교해서 좀 그렇습니다만
자신의 삶에 매순간 치열하게 대처하고 상황마다 최선을 다해
현명함을 꾀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므로서 결국 죽음을 맞이 한 어느 사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도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모든 것이 그 모양인지도 모르지요.
어영부영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군상..
거기에서 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구요.
10.26 사건 때..
김재규아저씨가 용산벙커로 그냥저냥 따라가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어? 어? 이러면 안되는데..맞아 가면 안돼..당초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차를 돌리라고 우격으로 말 할까?..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차를 돌리지?..꽤 많이 왔는데..어쩌지?..그냥 그곳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복잡한 일들이 많은데..다시 돌려 가기도 뭐하고..이대로 가게 되면 무슨 변수가 있을까?..그까짓 것 무시하고 그냥 밀어 붙이면 되겠지..그렇게 어렵게 밀어 붙이는 것보다 지금 쉽게 차를 돌리라고 밀어 붙이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글쎄..그게 나을까?..판단하기가 어렵구나..그냥 따라가면 무슨 수가 생길까?..어? 벌써 다 왔네..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우리모두 불완전하고 좀 더 채워야 하는 인격들.
오히려 인간적인 갈등의 한 국면을 엿보게 됩니다만
단 몇분의 우유부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했고 역사를 좌우했지요.
얼이 빠져 당황해 있는 한 인간의 흔들림.
아마도 그렇게 중대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아마 그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판단하고 행하는 것의 대부분이
그다지 깊은 사유의 결과물이 아닐 것이다라는 의심을 하게 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런 날들의 결과로 나중에 깊은 회한으로 아파하기도 했지요.
좀 더 치열하고 현명하게 살아야 한다는 자성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그것도 그냥 생각으로만 접어 버리게 되고.
갈구하고 노력하는 생활.
현실을 살아가면서 좀 더 나은 삶을 꿈 꾸는 일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 되겠지요.
이루려는 상태에로 자신을 근접시키는 노력은 우리가 지금도 해 내야 하는 숙제이겠구요.
다시 한마디로 말씀드린다면..
꿈꾸는 이상과 지금의 현실의 차이를 줄여 나가는 일이..
오늘 내가 한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 복잡한 관계와 인과들로 엮어져서 그다지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무조건 머리 싸매고 고민한다고 되어지는 것도 아닐테고.
김재규아저씨처럼 혼란해 하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야 합니다.
지금에 와서 별안간 똘똘해 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더욱 아니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장함을 흉내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매 순간의 삶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런 치열한 최선을 행하는데에 있어
아마 가장 큰 장애는..쓸데없이 많은 생각들일 겁니다.
전후좌우 위아래 요모조모 재어 보고 미리 걱정하고
그러다가 그만 머리아파서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보통 사람들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동물과 사람은 다르기 때문에 그런 모습일 겁니다만
어떤때는 동물들의 진지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감히 말씀 드려도 될런지요.
요 상황에서 동물 이야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옛날 동네에 살 때..
세발 강아지가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불편하지만 빨빨대로 돌아다니며 아주 잘 생활합니다.
자신의 발이 하나 없다고 비관하거나 다른 강아지 보기에 쪽팔려하는 눈치도 없습니다.
쩔뚝거리고 불편해 하지만..진지하기만 합니다.
사람처럼 자격지심도 컴플렉스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먹이에 대한 진지함..동네 일에 관심이 많아서 동네 어디나 다니며 구경합니다.
어느날 그 놈 옆을 지나치면서 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사지 튼튼하고 허우대 멀쩡한 나보다 네가 더 낫다.나는 컴플렉스 덩어리인데....'
그렇고그런 정념이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사유하는 인간이라서 갖는 특권정도로 취급하는 것에 저는 반대입니다.
그런 면은 동물이 더 낫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수선해서 쓸데없는 왜곡과 변질이 있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글 보시기가 역겨운 분들도 있겠군요.)
우리나라 속담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이 많으면 바보.."
"장고 끝에 악수(惡手) 나온다."
세상 너무 많은 관계와 인연으로 복잡하니..
잡다하고 많은 요인에 흔들리기보다
마음의 중심을 잘 잡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명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묵상하는 일이 지금 해야 하는 일 같습니다.
동물들 이야기에서처럼..
주어진 상황을 단순화해서 명료하게 이해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 하는 삶이어야 하겠지요.
자꾸 안으로 움츠러들고 내 자신이 왜소하고 하찮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마다 누구나 있게 되는 일..
이 밤..묵상으로 자신을 격려하고 고무시켜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자신의 마음 바탕을 깨끗하게 정리해 놔야 합니다.
"오직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나의 삶"
"유한한 나의 삶"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사람..너무너무 귀한 사람"
"나의 존재는 알게 모르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고마운 존재"
"그 존귀한 나는 지금 이 일을 하려고 한다"
"지금 맞닥뜨린 문제는 존귀한 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
"내 마음 먹기에 따라서 모든 일은 해결될 것이다"
"밋밋하게 인생을 살아가느니 시련을 해결하고 나중에 회상하며 웃게 될 것...."
이렇게..묵상의 바탕 언어들을 떠올려 봅니다.
존귀하신 분들..
같이 한 번 연상을 해 보시지요.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고 아끼시기 바랍니다.
만족한 삶을 위해..행복을 위해..
좀 더 치열하게..좀 더 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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