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만

먼 조상 ('02. 9/27)

산책길에서 2004. 2. 7. 16:51


비운의 네안데르탈人
(2002. 9.27)

 

우리의 직계조상인 현생인류는 약 4만년전에 출현한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 네안데르탈人이라는 선사인이 벌써 20만년간 오랜동안 득세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현생인류가 나타나면서 약 3만년전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꽝 사려졌다기보다는
어느 시기부터는 그 유골이나 흔적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하는게 맞겠지요.
아마 얼마간(약 1만년 정도)은 현생 인류와 대립 공존했다는 흔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흔적없이 사라진 네안데르탈인..과연 그들은 무엇이었을까요?

결론적으로..잘 모르겠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현재 인류에게 있어서
네안데르탈인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별개의 종족인지
아니면 이종교배되어 피가 조금 섞였는지는 이론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가 출현하면서 급작스럽게 몰락한 것을 보면
강력한 경쟁자인 새로운 인류에게 멸종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지금 사람들 하는 짓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도 같습니다.
그 시기에 빙하기가 있어서 적응 못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슬픈 종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네안데르탈인은 약 20만년동안 혼자 원시사회를 주도하면서도
그 긴 세월동안 거의 생활의 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닳아진 조개 껍질을 목걸이 장신구로 사용하기를 좋아 했던 것 같은데..
동그란 표면에 홈을 파서 실로 묶어서 사용했어요.
조개껍질에 구멍을 뚫어서 실에 꿰면 편하고 튼튼했을 텐데..
동그란 주위에 홈을 파내서 실로 묶여질 자리를 힘들여 만들고 있었어요.
그 짓을 20만년동안 변함없이 하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무지몽매한 네안데르탈인!!
그 조개껍질에 구멍을 뚤어 쉽게 실에 꿰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현생 인류 때 부터였습니다.

아..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이름은 독일의 네안데(?)市에서 맨 먼저 유골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니
우리 조선 사람들 하고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연구가 많아서 네안데르탈인이 주로 알려 졌을 뿐이겠지요.
그 당시 그 싯점에는 이쪽 극동쪽에 산재했던 선사 시대 사람을
"북경인"이라고 분류했으니 그 근처에 살았던 우리 입장에서는
북경인을 이야기 하는 게 맞는 일이겠지만 이쪽은 고고학 연구 자료가 없어서
맨날 남의 조상(?)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 같군요.
아니..더 정확하게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70만년전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을 이야기 할 것이 아니고,북경인을 이야기 할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서울인"이나 "암사인" 이야기를 해야 맞겠는데.....
국수주의라구요?
글쎄요..요즘에 다 그런 것 같던데....
우리가 국민학교 다닐때 세계4대 문명 발상지에 대해 배웠어요.
지금 말씀드리는 것에 훨씬 나중 이야기입니다만.
나중에 어디에서 보니까..
일본 문명이라는 것이 새로 등재 되었다고 그러더라구요.그래서 5대 문명이라고.
그런데 나중에 밝혀졌는데..유적 발굴 과정에서 어떤 놈이 아주 체계적으로
조작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일본 문화가 독창적이고 우수하다는 것으로 호도하려고 조작해 낸 사건이라는군요.
아주 맹랑한 일이지요.
그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튼..

네안데르탈인이나 우리 "서울인"은
도구를 사용했고 악세사리로 장식하기를 좋아하고 장례 습관도 있었으니
모르긴 해도 원시적 정신 세계는 있었지 않았을까 짐작을 하게 됩니다.
선사 시대의 네안데르탈인이나 우리 서울인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문명은 발달하지 못했으나 우리보다 더 나은 정신 세계를 가지고 있었을까..
언어가 발달치 못했을 테니까 심오한 정신세계가 있지는 못했겠지요.
그러나..정신적으로 깨임없는 어둠의 답답함을 살아왔겠지만..
그것을 저급한 영역으로 평가절하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인지가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해서 사람 그 자체가 훌륭해 졌다고 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뿐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만
지나친 미화일 수 있겠다 싶구요.
모르긴 몰라도..단순하고 정신적 평화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렵게 머리 쓰지 않고 서로 비교하지 않고 속 시끄러움도 없고 컴플렉스도 없었을테니까요.
극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생존해야 하는 고달픔은 있었겠지요.
식인 경향이 있었을 것 같다는 설도 있기는 하던데..
집단간 싸움에서 흉한 일이 있을 수 있지 싶습니다.
그것보면 동물들 중에 같은 종족을 먹는 것은 영장류(인간,원숭이)밖에 없는 것 같군요.
어째튼 어떻게 살아서 생존했는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았는지가 많이 궁금합니다.
그 어리석음으로 자연과 땅위의 적들과 싸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깊은 연민도 느껴집니다.
20만년동안 똑같은 방법으로 조개껍데기를 묶어서 목걸이로 쓴
그들의 어리석음과 순수함에 까닭모를 신비감이 느껴집니다.

현생 인류가 3-4만년전 쯤에 출현했다는 말씀을 이미 드렸습니다.
그 인류의 시조가 구약성서의 아담일거라는 설에 근거를 들이대는 사람도 있구요.
그 최초의 현생 인류가 발현하고 초기의 취락을 구성한 곳은 북아프리카 에디오피아 근처라고들 하고..
그곳에는 그것을 증명하는 유적이 꽤 많다고 합니다.
그곳을 시작점으로 해서 현생 인류가 사방 팔방으로 퍼져 나갔다고 전합니다.
북쪽으로 가서 유럽인이 되었고 아시아쪽으로 대장정 길을 나선 사람들은
중동인..인도인..동남아인..중국인..몽고인..한국인들이 차례차례 되었을테구요.

그 이전에 기존의 원주민 격인 네안데르타系종족으로
자바인 북경인"서울인"들이 각 지역에 산재 해 살고 있었지요.
그들 원주민은 이미 20만년전부터 안정된 모습으로 이미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동굴에 살았는지 물가에 집단 취락하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침입자인 현생 인류 입장에서는
기존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살아가기 좋은 조건을 선점했으므로
어느정도 공생과 경쟁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겠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야생의 열매가 많고 물이나 소금을 확보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은 이미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곳.
그런 곳은 정복자 입장에서도 탐이 났겠지요
그래서 원주민의 수렵과 채집의 노하우를 배웠을 것이고
그들을 회유하고 약탈했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거주지도 빼았고 내몰았을 것이고 더 잔인했는지도 모릅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니까
조개껍질 장신구에 대한 선호도 비슷했을 것이며
원주민의 문화를 모방 답습하고 나아가 발전시키는 모습을 취했겠지요.
그런 중에 껍질에 구멍을 뚫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겠고.

문득..컬럼버스가 중남미 산살바도르에 처음 상륙했을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 가 봤다라는 이야기가 아니고요..영화 이야기입니다.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보여집니다.
도둑질 할 마음으로 찾아간 컬럼버스와 그 옛날 크로마뇽인의 입장이 똑같았지 싶습니다.
컬럼버스는 인디안 원주민과 타협하고 그들의 도움을 많이 이끌어 냅니다.
맨 첨에는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겠지요.
컬럼버스가 전쟁으로 점령하지 않고 화친의 방향을 잡은 것은 그가 기독교인이라서
기독교 교리를 따르려는 의도도 있겠습니다만
숫자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올 것이며
자신들이 인명 피해도 고려 했을테구요.
원주민이 순진하니까 천천히 야금야금 해도 될 것이라고 통박을 쟀겠지요.
그리고 많은 시간들이 지나면서 남미 쪽을 전부 흡수하는 형국이 됩니다.
협조하지 않는 종족은 몰살시키기도 하구요.
그 옛날 현생인류는 막가파였으니까..이것 저것 재 볼 것 없이 침략을 해댔겟지만
그래도..전멸시키기는 전쟁은 없지요.적어도 노예나 포로로라도 잡아 놨을 것이고.
더우기 원주민이 숫자가 더 많았을 것이고 홈그라운드라는 점 때문에
컬럼버스 스타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었지 싶군요.
그러면 어떤 모양으로던지 피가 섞이겠지요.

현생 인류 중에 아프리카를 떠나서 서유럽에 정착한 선사인을
그 유골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서 크로마뇽인이라고 부르는 것이구요.
그들은 원주민 네안데르탈인보다 생김이 요즘 스타일에 가깝게 생겼지요.
원주민인 네안데르탈인들은 긴팔 원숭이처럼 팔이 길고 다리(정강이 부분)가 짧은 모양인데 반해서
현생 인류의 유럽 버전인 크로마뇽인들은 이마가 번듯하게 생기고 턱과 입 부위는 덜 튀어나오고
아래 팔은 짧아져서 균형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다리 아래 정강이 부분은 더 길어서 효율적인 몸 놀림이 가능했겠구요.
걷고 뛰는데 더 유리했을 겁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후에 발견되는 유골중에는
원주민 네안데르탈인과 정복자 크로마뇽인과의 특징을 함께 갖춘 유골이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피가 섞여서 이종교배..혼혈..트기가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유전적으로 누가 더 우성이고 열성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은 정복자의 세상이니까 원주민 피 약간이 정복자들 피에 섞여서 이어져 왔겠지요.
그런 유전인자를 가지고..
긴 세월동안 진화해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는 가설이
제가 보기에는 타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일부분,유럽의 독일이나 서남부 지방에서의 유골을 보고
짐작하고 있는 것이고
아프리카에서 동쪽을 향해 떠난 현생 인류는 누구를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조사가 거의 없으니..아무런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문외한인 제가 상상하기로는
호전적인 성향을 가지는 현세인들은 북쪽으로 올라가서 유럽에 크로마뇽이 되었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갸우뚱 해 하는 정신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해가 뜨는 동쪽으로 마구마구 걸어 갔을 것이다라는 짐작을 해 봅니다.
사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해..태양이 절대적 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모체는 태양입니다.
태양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원시 시대에는 태양을 신으로 추앙하기에 딱 알맞았겠지요.
추앙하는 것을 쫓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온 사람들은 아마도 신앙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 것이며 정신적이거나 휴매니스트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일 겁니다.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동쪽으로 이동해 왔고
그러는 동안 아마도 원주민 피가 더 많이 섞이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동쪽으로 움직이면서 몇 세대 살다가 다시 동쪽으로 가고 가고 하다보면
지리적으로 먼 길..많은 세월이 흘렀겠지요. 
제가 지금 40몇년 살았고 삼국시대가 대충 1300년 지났고
거의 흔적도 없는 고조선은 대략 2500년 되었지만
지금 이야기는 약30000년 동안의 이야기이니 실감이 나지 않는 거대한 시간일 겁니다.
그러다 보니 현생인류 대 원주민들의 이종교배가 좀 더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현생인류가 동쪽으로 이동하는 초기에는 다리도 길고 광대뼈도 안나온 사람들이
생겨 나다가 (중동인)
그 사람 중 일부가 다시 동쪽으로 가면서 원주민과 피가 더 많이 섞이면서
점점 광대뼈가 나오고 하체가 짧은 사람들이 만들어 지지요.(동남아인)
다른 종족으로 배척하면서도 피가 섞이고..많은 시간에 걸쳐서 원주민 피의 농도가 짙어져 가는 모양(극동인)이
오늘의 우리의 모습으로 완결된 것은 아닐까 모르겠군요..
저 혼자의 생각입니다.

비약과 억측이 심하다구요?
주의 주장이 아니고..그냥 상상해 보는 수준이니 괘념치 마시고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현생 인류중에 유럽으로 간 사람들과 아시아 쪽으로 간 사람들과의 기질의 차이가 그런 차이가 있었다면
원주민인 네안데르탈系 사람들은 어떤 맨탈리티를 가지고 있었을까 궁금해 집니다.
생존해야 하는 본능대로 살았을 것이고
본능대로 살았을 뿐 뭔지 모르는 미혹의 긴 터널을 살아내면서
그들의 우울한 눈초리가 연상이 됩니다.
우울한 네안데르탈인....
또,가족 이외에는 적대감을 느끼고 서로 호전적인 성향을 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고립이 현생 인류와의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는 부분 중에 하나였을 거구요.
또,앞에 말씀 드렸듯이..어리석고 지적능력이 떨어졌겠습니다만
혹시..맑은 영혼이랄까 심성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고
운명론자적인 평온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요.
왜 현생 인류가 아닌 네안데르탈계 사람의 기질을 따져 보고자 하느냐하면
지금의 우리의 한쪽 선조일 지 모른다는 가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멀리 떨어진 동쪽 끝에 까지 오면서 가장 많이 피가 섞였을 수 있다는 추측을 하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간다고 할까요....

다시 현생 인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발원하고 비대해지는 현생인류.
그들중 정신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 떠나온 동쪽행로..신앙의 끌림에 먼길을 온 사람들의 후예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신앙적인 기질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 같구요.
이슬람,힌두권을 제외하고
인구당 신자 수가 많은 나라라는 통계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갈구하고 욕구가 많은 사람들은 더욱 더 동쪽으로 가게 되고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안주하다 보니까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가까운 중동이나 인도 쪽 사람과 멀리 떠나온 극동 사람들과는 성향의 차이가 있나 봅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올 수도 있습니다만 인도쪽에서 더 동쪽으로 가기에는 큰 산맥이 가로 막혀 있어서 쉽지가 않았을 겁니다.
그 난관을 뚫고 지나온 사람들이지요.
중동인들이나 인도인들은 생김은 다이나믹한데 별 욕심없이 차분한 모습을 띠었고
극동쪽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꼭 해내야 하는 욕구를 마음 속에 간직한 사람이 된 원인일 것 같습니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몰려 오던 현생인류가 부라디보스크나 양양,강릉,호미곶
부산앞바다까지 와 보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겠지요.
일본 땅이 그 너머에 있을 것이라고는,아메리카가 그 너머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멈춘 곳이 우리나라 일 겁니다.
아무리 태양을 좇아 동쪽으로 달려와 봤자 태양은 그 만큼 물러나 있고..
그 끝에 와서 절망한 곳이 이 나라 아닐까..생각해 봤습니다.

일본 쪽 사정은 사실 독특하기는 합니다.
일본 사람을 왜 쪽바리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현재 일본인은 그다지 작지 않은 것 같은데....
당초 일본 원주민은 피그미족 처럼 작았습니다.
그들이 언제 멸망했느냐 하면 우리의 삼국시대에 사라졌다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발굴된 유골 중에 그 당시에 것으로 보이는 작은 사람들의 유골이 집단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백제를 주축으로 해서 고구려 사람,일부 신라 사람들이 넘어 갔지요.
왜 그 당시에 제일 가까운 신라와 일본이 앙숙이고 상대적으로 먼 거리인 백제와
친밀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만
한반도에서 넘어간 기마 민족(도래인)이 득세하고 원주민을 흡수해서
그들의 천황이고 되고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지역은 극동의 끝다리에 위치하고 또 섬나라이기 때문에
현생 인류가 한참만에 뒤늦게 점령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최근까지 살았던 네안데르탈系 사람들이 일본땅 원주민인 쪽바리族이나
홋가이도쪽 원주민 아이누족이었을 것이다라는 추론을 해 봅니다.
네안데르탈系선사인이 일본땅에서 최근까지(우리나라 삼국시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지리적으로 섬으로 고립되어져 있어서 현생인류가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고
빙하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땅에 많이 산재한 온천지역의 지열 때문일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인들의 내세관이나 행동양식이 다른 곳 보다 다른 것이 가장 최근까지 네안데르탈인이 존재했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의 죽음을 미화하는 정신,고립감,우울이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하고.

신라의 왕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신라의 왕의 금관은 순록의 뿔을 형상화 했습니다.
단순한 사슴의 뿔이 아니고 순록의 뿔 형태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순록은 만주 북쪽 툰드라지역에 사는 커다란 사슴입니다.
전에 어느 글에서 이야기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 지역 원주민은 순록이 주식이면서 순록을 신앙으로 받드는 경향을
요즘도 보인다고 합니다.
알라스카를 통해서 미국 대륙으로 넘어간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중에도
추장의 왕관이 순록의 뿔을 쓰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북만주쪽 부족이 일반적인 토템인 순록 뿔..
신라 왕의 세련된 왕관이 왜 순록의 뿔을 형상화 했느냐를 따지는 사람들은
원래 신라인들이 만주에서 연해주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서 남하한
북방 계열 민족이라는 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순록이 없는데 하필이면 왕의 권위를 순록의 뿔에서 이미지를 가져 올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신라세력은 시기적을 비교적 나중에 한반도에 정착한 부족이라는 뜻이지요.
초기에 떠나온 현생 인류가 한반도를 점령하고 살고 있었고
일본땅의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때까지 살았던 일본의 네안데르탈계를 회유하고 점령해 나가고 있는 와중에
북방계인 신라가 끼어드니까 거부반응을 보인 것일 테지요.
백제는 일본과 친했는데 가까운 신라와는 극단적인 대립의 관계가 된 이유가.
 
그냥 잡설이었습니다.믿거나 말거나..입니다.

현재 전세계적을 많은 민족들이 그 생김과 마음 모양이
다른 상태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부시란 놈은 꼭 전쟁을 하겠다고 광분하고..
그 태도를 보자니 마치 악마나 초자연적인 외계생물과
같은 이질감과 적대감이 생깁니다.
같은 현생 인류가 아니고 마치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과의
차이 정도의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그 옛날에 있었을 수도 있는 인종청소나 배척이 오늘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지기도 합니다.
차제에 그 이질감의 원류를 한 번 따져 보고 싶기도 했고..
긴 흐름에서의 지금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이것 저것 잡다한 현상들을 조합해서 가정도 해 보고..
하여튼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아래는 선사 시대 연구와 관련한 기사 몇 토막입니다.


약 2만8천년 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에 대한 유전자(DNA) 분석 결과 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진이 28일 밝혔다.
연구진은 남부 러시아 카프카즈 산맥에 위치한 메즈마이스카야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유아의 갈비뼈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네안데르탈인의 DNA 배열형태와현대 유럽인종의 배열형태는
서로 유사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
“이같은 결과는 현대 유럽 인종이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라는
기존의 믿음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97년 독일 뮌헨대학 연구진도 이번과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연구진은 1856년 독일서 발굴된 최초의 네안데르탈인 유골을 DNA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의 DNA 구조가 현대 인류의 DNA 구조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전까지는 키가 작고 두개골이 두꺼우며 턱이 넓은 네안데르탈인이 진화 단계상 유인원과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뮌헨대학 연구진의 논문 발표 이후 네안데르탈인은 단지 최초의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과 공존했을 뿐 현대 인류와는 무관한 별도의 종(種)으로 그 지위가 격하됐다. 스위스 실험 암연구소(IECR)의 마티아스 회스 연구원은 “러시아에서 발굴된 화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구조에 대한 확증적 사실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이 언제 멸종했으며 얼마동안 크로마뇽인과
공존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아 있다. 다만 지난해 10월 미국 연구진이 크로아티아의 동굴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뼈를 방사성 탄소로 측정한 결과 약 2만8천년 전 것으로 드러나 3만4천년 전 멸종했다는 기존의 이론과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한편 글래스고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과 현대 인류의 관계에
관한 더욱 정밀한 모습을 밝혀내는 것이 이후의 연구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 30일자에 공개 될 예정이다.
                   -조선일보 2000.3.29-

 

포르투갈에서 현생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무덤 발견
[출처 : Science vol. 283 (5399) : 1999년 0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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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고고학자들은 포르투갈에서 희귀한 발견을 하였다. 이는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생각되는 어린아이의 완전한 유골이었다. 이 유골은 붉은 황토로 덮어져 있었으며, 장례 예식에 따라서 2만8천년 전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골이 이베리아 반도의 현생 인류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골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연구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유골뿐만 아니라 무덤은 현재 추측만 하고 있는 시대의 문화적인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이 무덤이 만들어진 시대는 마지막 네안데르탈인들이 현생 인류와 함께 이베리아 남부 지역에서 공존하던 시기이다.

비록 두개골은 부서졌지만 아래턱뼈에는 치아가 완전한 형태로 존재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튀어나온 턱은 이 아이가 해부학적으로 현생 인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리스본 대학교의 조아오 질하오는 말한다. 질하오는 이번 발굴팀의 팀장이었다. 지난 12월초에 질하오의 2명의 조수들이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120킬로미터 떨어진 골짜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이 과정에서 목탄과 석기(石器)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나중에는 사람의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이 유골은 붉은 황토를 적신 짐승의 털로 쌓여 있었으며, 이는 붉은 황토가 마른 피와 비슷한 것에서 유래된 행동인 것으로 생각된다. 목걸이로 추정되는 구멍 꿇린 조개 껍질이 목 주변에 놓여있었으며, 동물의 뼈가 머리와 발 주변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중부와 동부 유럽의 초기 현생 인류 무덤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특징들이라고 질하오는 말한다. 이 아이 유골은 인류가 오랫동안 공통된 문화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유골은 2만1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에서 2.5미터 아래쪽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이 유골은 2만8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이러한 추정 연대가 맞다고 한다면 이 유골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현생 인류의 초기에 속하는 것이라고 질하오는 말한다. 서부 유럽에 존재하는 2개의 무덤만이 이와 비슷한 연대에 속한다. 이 아이 유골의 발견은 다른 과학자들의 관심을 유발하였다. 워싱턴 대학교의 고고인류학자 에릭 트린카우스는 이 유골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이미 이번 주에 리스본으로 출발하였다. 만일 이 유골의 추정 연도가 맞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인류학자 크리스 스팅거는 말한다. 현재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 당시의 자료들은 거의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스팅거는 말한다. - (kimjs)

 

다음의 기사는 인류가, 현생인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과의 잡종일 수 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는 흥미있는 기사입니다.
지난해 포르투갈에서 발견된 2만4500년 된 어린아이 유골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적 특징을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뉴욕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포르투갈에서 발견된 유골을 분석한 고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하고, 이는 현재의 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의 잡종일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직접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시기에 상당 기간 공존했을 뿐 아니라 네안데르탈인과 짝짓기를 하고 동거생활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현재의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을 구분하고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해 크로마뇽인으로 대체됐다는 주장과, 현재의 인류는 네안데르탈인 등과의 교배에 의한 잡종이라는 `이종교배설'로 나뉘어 대립해온 두가지 인류기원설 가운데 이종교배설이 힘을 얻게 됐다.
네안데르탈인은 지금의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30만년 전부터 살다가 마지막 2만여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한 뒤 지금으로부터 3만년 전에 사라졌다.
                -한겨레 신문 1999.04.25-


독일서 네안데르탈 유골 발견

독일 연구진들은 독일 서부 뒤셀도르프 인근 동굴에서 4만2천년된 네안데르탈인 유골 일부를 발견했다.

유골이 발견된 곳은 지난 1856년 첫 네안데르탈 유골이 발견된 뒤셀도르프 인근 네안더 계곡의 동굴로, 이번에 연대가 확인된 유골은 어린이의 치아와 성인의 오른팔 뼈 일부다. 튀빙겐 대학 발굴팀에 따르면 탄소연대측정결과 이들 유골은 4만2천년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학의 랄프 슈미츠씨는 1856년 발견된 네안데르탈 유골조각과 달리 이번에 확인된 성인 유골 조직은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며 치아는 12세 정도의 어린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슈미츠는 그러나 이 유골 조각이 최초로 발견된 네안데르탈 유골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이들 유골이 시기적으로 수세기 가량 떨어진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네안데르탈 유골들이 현대인과 아무런 유전적 유사성도 갖고 있지않다고 말해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로부터 진화하진 않았다는 기존 학설을 확인했다. [본 AFP=연합]
2002. 9.23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