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숭배
(2002.10. 5)
우리가 사는 지금의 사회를 명칭하는 여러 말이 있던데..
그 중에 하나로 불확실성 시대라는 말이 있을 것이다.
운명의 실줄 날줄이 너무 오묘하게 엮여 있어서
어떤 앞날을 맞게 될 지 누구도 모른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려면..그 와중에 무엇 하나 확실하게 안심 되는 일이 없다.이번 수해가 우리에게 작은 교훈을 주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곳 문명의 장소는 너무나 취약하고 혼란스러울 소지가 많다는 것일 것이다.
전기와 수도와 도로가 끊기면 우리는 물에서 건져 논 물고기 신세가 된다는 간단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봉변과 재난은 가난한 이에게만 적용되는 일임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를 더 확실하게 해야 함을 안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경제가 절단 날 수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미래에 대한 준비로서 미리미리 확보해 놓고 많이 쌓아놔야 한다.
그래야만 안심 할 수 있다.
덕이나 인심을 쌓을 일이 아니고 돈을 쌓아야만 안심이 되는 세상이다.돈 없는 사람은 없는 없는 것에 한이 맺혀서 돈을 탐하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부족한 듯 해서 더 탐한다.
그래서 모두 탐하고 모두 탐하니까 더 탐하게 된다.
그 끝은 없을 것이다.원숭이들은 턱밑에 여벌의 먹이주머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일이 여의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맨날 풍족하게 먹고 살 수도 없고..어렵게 기회가 와서 많은 식사를 할 수 있을 때에
최대한 많이 먹어 둬야 한다.
배불러서 막상 더 못먹는다면 여간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원숭이의 턱밑 주머니는 그런 필요성에서 생겼을 것이다.
배불러서 못먹을 정도가 되면 삼킨 음식이 턱밑 주머니에
임시로 보관되었다가 조금씩 식도로 밀려 간다는 것이다.
나중에 재수없어서 굶어죽을 수도 있으니..기회가 왔을때 최대한 삼켜대지만
너무 꽉차서 들어갈 수가 없었을 것이고
많이 먹어서 볼이 메어지듯이 식도 근처 부분이 늘어 났을 것이다.
긴 시간 동안..텃밑이 늘어나는 진화 끝에 지금의 턱밑 주머니가 생겼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많이 먹은 놈은 턱밑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원숭이들은 이제 어떻게 진화해 나갈까?
아마 먹이 주머니가 더 커질 것이다.사람들의 경우는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은 잘 싸서 보관했다가 나중에 먹으면 되기 때문에
원숭이의 몸처럼 그렇게 만들어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잘 보관했다가 아예 먹을만큼만 꺼내어 먹는 것이 아주 효율적이다.
그런 기능을 하는 곳이 곳간이거나 쌀독이었을 것이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생선이나 육고기를 먹고 싶다면 시장에 가서
곡식이나 야채를 팔아 바꿔 먹으면 되어었다.
돈..
그런 일련의 경제행위를 원활하게 하는 편리로서 돈이라는 것이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그 예전에는 그것이 삶의 편익의 개념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효용가치에 대한 판단의 기준점 역할과
재화를 사들이는 교환 수단,보관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해 왔다.
돈 문화가 있었으므로 사람은 원숭이처럼 턱밑에 먹이 주머니가 필요없다.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돈은 본래의 그 기능이외에 또 다른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좀 더 다른 의미가 생겼다.
신앙의 의미.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무조건 많이 벌기를 희망하는 것으로서
그런 필요를 많이 느끼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열렬한 경쟁 속에
병적 집착과 가치 전도가 이루어 지고 있다.
오랜 집단 히스테리의 개념이다.
논리가 필요없고 의심이 필요없다.
많이 쌓아놓고 그 앞에 서서 사진 찍으며 자랑하는 습속이 일반화되었고
자랑하는 사람과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는 사람들의 아귀다툼에 의해
이제 또 다른 추세를 만들어 낸 지 오래 된다.
돈에 연연하지 말고 정신적인 부분에 매진하자는 주장은 이제 너무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돈은 이미 나의 우상이 되어져 있다.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고 삶의 목표이다.
인간의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고
꼭 필요한 수량의 재화에 대한 판단은 그 욕망과 대세에 묻혀서 할 수가 없다.
이런 시스템하에서는 무한 경쟁과 무한대로 소유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
그러면서 무한대로 공허하고 피폐해 질 것이다.
인간은 변질을 멈추고 해체쪽으로 갈 것이다.
우리가 소유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원숭이의 여벌의 먹이 주머니 정도 크기여야 하지 않을까?우상을 숭배치 말라는 계명이 있다.
기독교의 계명이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다른 종교인이나 비신자도 해당되는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삶의 본질,신앙의 본질에 충실해야지 괜히 다른 엄한 것에 마음 쏠리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고매함은 대세에서 소외된지 오래다.
삶의 본질이 돈이요 신앙의 본질도 돈인것만 같다.
지금의 시대의 의미로 본다면 화폐라는 가치척도가 그 옛날의 우상..
그것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원숭이의 턱밑 빵빵함이 그 원숭이 본질보다도 더 크게 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그 빵빵함이 동물 사회의 속성인 우월자의 지배 욕구를 채워 주기 때문일까?
그러나 아무리 진화 발전한다해도
원숭이들은 그들의 빵빵한 내용물을 신봉하거나 숭배하지 않을 것이다.구약시대 옛날의 우상의 형태는 금붙이이나 귀한 물질로 만든 동물이나 아이콘의 모습으로
비교적 그 생김이 구체적이었다.
잘 모른다..영화에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앞마당에 단군상이 있어서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밤에 잘라버리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너무나도 그렇고 그런 행위일 것이다.
우상 숭배가 별 것인가?
본질을 왜곡해서 온통 집착하는 것..그것이 우상일텐데
영화에서 본 모습..동상의 모습을 한 것..그런 것이 요즘 세상에 우상 측에나 들까?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열렬한 우상숭배자임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우상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돈이 우리의 절대적인 우상숭배 대상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신앙이며
아니..신앙 그 위에 있는 절대자라고 한다면 지나친 이야기가 될 것인가.우리는 그 우상을 부정 할 수 있을까?
평생 그 우상 숭배밖에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이제 와서 그 우상을 짐짓 의심 해 본다.
그러나 그 의심이란 것이 단지 없는 자의 자기 합리화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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