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만

나이 이야기 (1) '02./10/25

산책길에서 2004. 2. 7. 17:38


나이
(2002.10.25)


깊은 가을에 들어 와 있습니다.
좀 있으면 새로운 한 해를 맞겠지요.
당연히 한 살의 나이를 더하게 되겠고.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마음 시리게 합니다.
30대 되는 것이 거북했고 40대 되는 것이 끔찍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제 또 다른 나이대(50)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싫군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초조감,어리석음이 문제일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나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살피고자 난삽한 이야기를 늘어 놓습니다.
자기 기만이 될 지..다른 사람을 미혹하게 할 지 모를 그런 이야기가 될 겁니다.


[1] 소시적 단상 몇 개
--어릴 적 나도 나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자기 또래를 살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겠지요.
구체적인 생각은 안해 봤지만 마치 어른으로 태어났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을 갖는가 봅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을 몸소 살아 왔으면서도 나 자신은 자기 어린 시절을 인정치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다섯 살때 쯤이었을 겁니다.
아스라이 멀기도 하고.. 은밀하기도 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본원적인 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평범하고 얌전한 아이..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그런 나이였겠지요.
나의 빛나는 모습과 말투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계속 사랑받기 위해서 신경 곤두세우고 지냈을 겁니다.
스스로 골몰하면서 사랑받는 캐릭터를 나름대로 관리하기도 했었던 것 아닐까요...
'이렇게 하는 데도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을거야?'
미리 계산되어진 행동이었을 겁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보며 웃었지요.
상고머리로 깎은 내 머리를 사랑스럽게 만지기를 좋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나를 좋아하고 나는 그들을 웃게 하고..
그 질서가 흐트러지면 나는 속이 불편해서 심통을 부리기도 했지요.
내 요구는 누구에게나 당연히 받아 들여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궁리했으며 그 속궁리가 심해서 내 속에서만 들어앉아 있었으며
나중에는 밖으로 나오기 싫었던 것이 아닌가..생각케도 됩니다.
누구나 자신을 싫어하거나 자신을 거절하는 것에 마음 편할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그때부터 그 부분이 엄청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자아에 대한 인식이 강한 아이..다소 선병질적인 경향의 아이였지요.
그러던 어느 햇빛 쨍쨍한 날..
나는 엿장수 아저씨 지게 위에 엿모판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엿을 고아서 오랜동안 저어 주거나 늘여붙이면 엿이 하얗게 됩니다.
하얀 엿덩이가 널판지만하게 컸습니다.
그위에 문양과 색깔 넣어서 데코레이션이라는 것도 했었고..
붙지 말라고 발라 진 밀가루가 엿보다 더 하얗게..
햇살 아래에서 황홀하게 빛났었지요.
작은 망치와 엿 자르는 무쇠칼이 나무 엿판 주변에 있습니다.
무쇠칼은 손잡이가 가제로 둘러져 있고 오래 사용해서인지 검게 반질반질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밀가루와 미세한 엿 파편이 그것에 묻어 있습니다.
손을 뻗어서 그것을 떼어서 입속에 넣고 싶지만.....
꿀벌이 꿀을 탐하듯 달큰한 냄새에 취해서 엿판을 주시했던 것 같습니다.
무쇠칼은 엿의 양을 결정하는 법과 같은 것..아저씨는 절대 권력자와 같은 모습이었지요.
엿모판이 올려져 있는 싸리지게 속에는 엿 바꿔 간 고물들이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해진 고무신..유리병..녹슨 쇠붙이등등..
그 맛있는 엿을 먹고 싶은 욕심에 안절부절 못했겠지요.
집에 엄마는 없었나 봅니다.
집에서 낡은 운동화를 가져다가 그 아저씨에게 건네주었지요,
엿을 달라고.
"운동화는 안 받아."
아직 신을만한 운동화이기 때문이어서 그랬는지..
그것은 쓰임이 안되는 고물이었는지..그 아저씨는 거절했습니다.
"......"
내가 기억하는,나를 거부한 최초의 사건이었지요.
그냥 속상한 상태였는지..울었는지..확실하지는 않지만
충격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랬기에 43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요.
은밀하고..부끄러운 기억입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끄집어 낸 적이 없었어요.
그 이후로 많은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 대학이 나를 거절했고
많은 사람들과 기회들이 나를 거절했습니다.
그동안의 많은 거절 경험으로 이제는 이골이 났을만도 하건만
거절은 요즘에도 마음 아픈 일이지요.

언제인지 모릅니다.내가 가지고 있는 최초의 기억일 것 같은데....
갓난아기 때였을 겁니다.
구름 속 처럼 힛뿌옇고 희미한 이미지와 같은 기억입니다.
어머니의 입냄새에 익숙했지요..
습관같이 되뇌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아이고..가엾어라..쯔쯧쯧쯧..."
"너꾸..우리 쫌식이..가엾어서 어떡하니..."
"가여운 우리 쫌식이.."(실명 쓰기가 뭐해서....)
나를 부르는 이름 뒤에 꼭 붙어다니는 가엾다는 수식어..
왜 나만 보면 가엾다는 말을 달고 지냈는지 모를 일입니다.
자신 속에 갇혀지냈던 어머니 자신만의 스타일이었을까요....
어린 나는 어머니를 아마 빤히 쳐다 봤을 겁니다.
왜 내가 어머니에게 가여운 존재였는지..
귀엽다는 말을 잘못 발음해서 가엾다고 했을까..
밝지 않은 성격의 여인..비관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은 곧 연민일 수 밖에 없는 걸까...
언제 한 번 여쭤봐야 할 것 같기도 한 데..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74세의 노인에게 48세 아들이
그분 28살때 왜 자신에게 가엾다고 입버릇처럼 그랬는지 물어 본다는 것이 좀 웃기는 일이기는 합니다.
어머니가 나중에 내 동생을 낳고 그 놈을 어떻게 불렀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더 컸을때의 일일텐데 전혀 기억이 나는 게 없습니다.

일 다녀온 아버지는 갓난아기였던 내 동생을 두 팔로 들어올려 까꿍을 하고 있고
내 동생놈은 간드러지게 웃었지요.
"우리 돼지..호로로로로..."
아버지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까꿍을 해댔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동생을 들고서 웃는 모습은 참 낯설었습니다.
원래 무뚝뚝하고 말이 없었던 분이었거든요.
그런 그분이 다른 사람이 되어 막내아들을 얼르는 모습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한마디로 엽기적이었다고 할까요....
하늘 높이 비행기도 태워주고..
아이 볼에다 입을 대고 바람을 불어내어 부르릉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왜 돼지라고 할까..강아지도 아니고 병아리도 아니고 금붕어도 아니고..
지저분한 돼지라니....
그 옆에서 나는 멋적게 그냥 멀쩡히 서있었을 겁니다.
아마 질투심에 몸을 떨었겠지요.
"드러운 돼지새끼.."
동생이 싫었고..
돼지같은 놈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그 저급한 취향을 못마땅해 했겠지요.
그 때에 우리 아버지는 37세 정도였을 겁니다.
지금의 나보다 10년이상 어린 나이였을때 일입니다.
그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병원에 오래 계셨었습니다.
병실 복도에서 내려다 보면 저만치 장례식장이 있었고..
그 옆 병동에는 신생아실이 있었어요.
죽고..나고..
한쪽에서는 죽고 한쪽에서는 태어나고..
한쪽에서는 울고 한쪽에서는 웃고..
삶의 그런 양면성을 같이 본다는 것은 참으로 생경했었습니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의 모습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일 것이고....

꽤나 오래전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하게 하는 의도는
그 어린 내가 지금의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들춰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영아기의 체험과 유아기를 거쳐
소년..청년..장년을 살아오면서 그 모습들이 전부 다 내 것이 되었습니다.
어릴때의 깊은 인상은 수십년이 흐른 지금에도 나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은 지금의 나,어른의 감정이 아니고 그때 그 어린이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모습들이 함께 엉켜서 내 성격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향이라고 하고 취향이라고도 부르고 기질이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수십년전에 본 영화 한 대목이 아니고
그것은 예전의 나였고..바로 지금의 나의 바탕일 겁니다.
흘러간 기억 쪼가리가 아니라..잠재의식속에 있는 지금의 나입니다.
그리고 이따금 어린 그곳에서 근원적인 욕구가 명령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거절 당하기는 죽기보다도 싫어.그러니 어쩌지? 미리 단절시켜야 해"
어릴때 나의 아픔이 내는 목소리입니다.
거절 당할까봐 속상해 하며 망설이고
실패가 두려워 그 전에 포기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의 뿌리같은 것 입니다.
"나는 불쌍해..불쌍한 나를 위해주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나의 의존적 성향이 꽤나 못마땅해서 그를 부정해 왔지만..
어머니가 물려 준 가여움의 뿌리가 깊습니다.
결정적일때 자기연민의 끈적임이 저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스며나옵니다.  
어린 시절을 그런 식으로 떠올려 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연민의 습관이 아닌지.....
"내것을 가져가려는 사람이 누굴까? 상실은 견딜 수 없는 일이야..지키자.지켜야 한다."
빼앗기는 것은 그때 이후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 되었지요.
병적일 정도의 두려움과 질투,갈등..그것들은  내 어릴적 그때그대로 입니다.

사람 사는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습니다만
모든 일은 과거입니다.
유관순 누나는 19(?)세..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37세,50세,60세 70세 78세
어머니는 28세 40세 50세 60세 70세 74세
내가 경험한 나이들은 3살 5살.....48살..
그런 상황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사는 게 아닐까요?
현재는 지금 막 과거로 흘러 지나쳤습니다.
지금이라는 것은 방금 기억 속으로 가 버렸습니다.
내 관념에는 현재는 없고 기억만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78세를 사셨지만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을때의 아버지 모습이 강렬하게 기억됩니다.
아버지의 모두것은 이제 기억 속에만 있습니다.
유관순 누나도 그렇고..나 보다 어린 아버지인 셈입니다.
과거 속에,기억 속에 있는 나도 풀어 준다면..
내 나이라는 것이 주민등록상의 나이일 뿐
지금 내 마음은 사춘기를 막 지났습니다.
고착된 패라다임에서 풀어주니까..이제 우리 아버지와 제대로 촌수를 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속에서는 을지문덕 장군이 거북선을 타고 인천상륙 작전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나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숫자 놀음이겠다 싶습니다.

투비콘티뉴드입니다.
이어서 다음에 한 번 더 올리겠습니다.
이제 약아졌다구요?
그렇기도 하고..
좀 혼란스럽습니다.
뭔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릴때의 묘사가 너무 지나쳤습니다.
나이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좀 문제있음을 실증하기 위해서
어릴 적 이야기기를 끄집어 냈었지만
실례를 든다는 것이 너무 지나쳐서
꼬리가 몸통이 되어 버렸네요.
사실 저는 말 할때도 자주 그렇습니다.
가지치기를 해서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보면 본 줄기를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어느정도만 이야기하고는 단호하게 자르고 본론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한도 끝도 없이 가지치기를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도 여의치 않구요.

시간 참 빠르네요.
시월이십오일 새벽에....

 

'지적 오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 이야기(3) '02./10/27  (0) 2004.02.07
나이 이야기(2) '02./10/26  (0) 2004.02.07
나이키社는 공장이 없다 ('02.10/19)  (0) 2004.02.07
한글날에 부쳐..('02.10/10)  (0) 2004.02.07
우리들의 우상 ('02./10/ 5)  (0) 200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