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주한의 마누라가 혼절한 채 살찐 몸을 뉘이고 있다. 절실함이 지나쳐..이제 신앙이 되었다. 핍박을 헤쳐나오면..영광의 순간이 있다. 티비에서는..고기의 신선도를 높이게 보이려는 선전이 가득하다. 대중은 그 돼지처럼 골격을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다. 고기와 뼈와 껍질의 연금술사.. 찾아 온 여자보다 남자 푸주한이 더 참하고 이쁘게 생겼다. 여리게 생겼다.
푸주한의 전성시대
(2003. 3. 4)
'인간의 존엄'..그것은 이곳에 없다.
여자의 허연 뱃살 언저리에 더러운 핏자국과 찌꺼기가 묻어있다.
푸주한은 봉걸레만한 진공흡입기 깔데기로 여자 살속 피하부분을 자꾸만 쑤셔댄다.
이른바..
지방흡입 기술이 시술된다.
피하에서는 기름덩어리였던 것이..자꾸 쑤셔대니 껄죽한 액체로 곤죽이 되어..
투명한 단지에 쏠려 들어가 채워져 간다.
게으르고 일하지 않는자의 고름이요 배설물이다.
그 옆에 누워있는 어린 여자는..
가슴 옆 살을 도려내고..고무액을 넣고 있다.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여인의 마음을 이해하란다.
진정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안단 말인가?
언제부터 고무액이 아름다움이 되어 버렸나.
3박4일 동안 고민해봐도..그건 '아름다움'이나 '옷맵시'도 아니고
그냥..'먹기 좋아 보임'이다.
이미 우리 삶은 참으로 욕되다.
가식과 기만만이 이곳에 어울린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겨운 뻔뻔함만이 있다.
'사람이 가져야 하는 순수'..그것은 이곳에 없다.
여자가 푸주한에게 몸을 내 맡겼을 때는 이미 그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삶기 직전의 돼지와 같았다.
육욕의 신.. 허울의 신..질투의 신..
거짓과 기만과 허툰돈이 이 종교의 사도..
확신하는 신앙을 위해서..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있는 수많은 신도를 거느린..
가장 강성한 종교이다.
순교.
푸주한의 마누라는 순교자가 되었다.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된다해도..돌로 쳐 죽임을 당한다해도..
신앙을 져 버릴 수 없는 그녀들은 순교자다.
비록,인간의 존엄이 잠시 홰손된다해도..인간적 순수를 잃는다 해도..
잠시 삶은 돼지가 되어 고기조각이 구역질 나게 더럽게 보인다 해도..
그 욕된 몰골은 잠시의 고난일 뿐..
신앙을 지키려는 순교의 비장함 앞에서는 그냥 사소한 해프닝일 뿐이다.
그래서..그 여자는 피를 흘리며 실신하여 누워있다.
그것은 순교 의식에 다름 아니다.
그랬던 그 여자는 터진 살을 다시 꽤매고..이제는 우아한 몸짓을 지어본다.
자신감과 자랑스러움에 외출을 계획한다.
살 찌기 전의 옷을 입던가..새로 옷을 사 입는다.
우아하고 힘있게 웃는다.연신 웃는다.
삶이 너무 아름답다고 되뇌인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의 감사는..암컷으로서의 우월감의 영역일 것이다.
7박8일간 고민해 봐도..
더러운 고기의 배열이 가져다 준..더도 덜도 아닌 고기의 배열 그 자체의 기쁨이다.
자기의 신에게 감사의 경배를 바칠것이다.
세상은..여자가 좀 전에 삶은 돼지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신비한 인격을 캐치하고 외경의 마음을 금치 못한다.
결과가 좋으면 모두 좋은 법.
더러운 돼지에서 신비한 인간이 되었다.
그 치사한 '아름다움'..그 이름으로.
그러니..
돈이 없어서..
아니면..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성격 때문에..
겁이 많아서..
못하는 패배주의 근성의 인간들 보다야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신앙의 승리를 소리높여 구가한다.
표면적인 자신의 신앙..? 그것..필요없다.
실질적인 진짜 내 신앙이 있을 뿐이다.
진실한..내게 기쁨을 주는,내 어여쁜 신이여....
이곳 티비 특징은 비열함이다.저급한 오렌지족 돼지 수준이다.
좋은 푸줏간에 다녀온 잘 빠진 돼지 한마리를 정해서..서로 짜고 대중의 우상으로 만든다.
간단한 일이다.여러번 대중에게 소개하면 된다.
누구든..익숙함의 마력 앞에 굴복한다.
몇가지 예쁜 캐릭터를 설정해서 그렇게 연출하면 된다.
우상에 목말라있던 대중은 잘 빠진 그 돼지에게 무조건적으로 열광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 돼지가 이 곳에서 잠깐이나마 아름다움의 모델이 된다.
참 간사한 일이다.
대중은 티비에서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느끼고 따른다.
티비는 방송채널 말고..아마 다른 채널을 하나 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변덕스런 마음을 조정하는 기능의 채널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그렇게 쉽게 마음 변하고..다른 사람들과 다르면 불안해 하고..그러지 않고서야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극비리에..티비를 보는 사람들 뇌파를 자신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채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몇달 지난 것에 금새 싫증을 내고 변덕을 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지루하고 한심해서 그렇게 금방 비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요사스런 일이다.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참으로 간사하고 괴이한 일이다.이해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건 신앙의 영역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조정에 의한 것일 것이다.
아무래도 그게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몇달만에 "이제 촌스러워서...."하며 외면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신이여..과연 '세련됨'의 그 끝은 어디인가....
인간의 이 요사스러움의 열쇠는 누가 쥐고 있단 말인가....
그 우상돼지와 비슷하게..고기의 구성을 달리 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이때에 우리의 푸주한이 나선다.
푸줏간에서 쓰는 줄(칼 가는 쇠막대기)에 칼을 갈면서....
푸주한은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삶의 기쁨을 주는 자신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메시아라고....
사실 그런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단 말인가.
신비하며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푸주한은 고도의 기술이 있다.
생명을 빼앗지 않은 상태에서..고기를 저미고 뼈를 발라내고 가죽을 오려낸다.
신통한 기술이다.
살 자르는 칼 기술 뿐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하는 비지니스 기술이 발달한다.
대중의 변덕스런 사조를 잘 꽤뚫는 그들은 '아름답다'라는 것이 얼마나 간사한지를 알고 있다.
그런 정도의 간사함이라면..대중을 뒤따를 필요가 없다.
새로 만들어 따르라고 하면 될 것이다.
모든 권력은 그들에게 위임되었으니 촛점잃은 대중의 인격을 신경 쓸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 그것은 촌스럽다'
'이것도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이렇게 바뀔 것이다'라고 드세게 부러짖으면 된다.
좀 있다가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비지니스 기술 뿐이 아니고..이제 푸주한에게 대중을 좌지우지할 권력이 생겼다.
그 모든 기술에 대해 대중은 광신도처럼 열광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고도 부른다.
고기와 뼉다귀와 껍질의 절묘한 조화..
그 작은 변형에 따라서.. 균형과 파격이 창조되고..대중은 무조건적으로 열광한다.
경이로운 일이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
메시아가 행하는 자선 이벤트..이적이다.
푸주한과 자주 접할 수 있는 구룹과 그렇지 못한 구룹은 이제 적대 관계가 될 것이다.
선택받는 자와 소외받는 자로서 갈등일 것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어서 푸주한의 단골 고객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를 사는 자로서..구원 받음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어느 푸줏간이 더 낫다고 자랑하는 선전이 되게 많다.
날라리 같은 선전이다.
직업에 귀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푸줏간 아저씨들보다 돈을 더 버는 것을 뭐라 할 수 없다.
더럽게 버니까..수입이 좀 많아야 하는 것 당연하다.
착하게 공부 잘해서 그것 할 테니까 그렇고..
똑똑하고 생각도 많은 사람들이니까..마음 고생이랄까 갈등도 많을 사람들일테니까 그렇다.
단,그들이 의사라해서 명예를 가지는 것은 옳지 않다.
고매함을 같이 가지는 것은 반대다.
원해서 그리 되지 않았겠지만..어쨌든 그들은 백정이고 푸주한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안스럽다.
그냥..
그리 되어진 이 시스템에 한 부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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