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만

장애인 편견 ('03./ 4/22)

산책길에서 2004. 2. 8. 11:02

우리 사회의 폭력적 시선들...(부활절의 오늘의 의미)
(2003. 4. 22)

아무 생각없이 행하는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를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들어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생각만으로도..
상처를 입히게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입증된 학설은 아닙니다만..
우리의 뇌파중에 알파(α)파는 상대방에게 인식되어진다고 하는군요.
상대방이 아무리 호의적으로 가식한다 해도..껄적지근한 그 무엇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시시대에는 잘 발달되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퇴화해 버린 동물적 본능의 영역이지 싶습니다만.
그런 류의 그 무엇이 뇌파의 작용이라는 것이지요.
상대방이 방출하는 알파파를 부지간에 내 자신이 수신하게 되고..그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를 이따금 경험하게 되는데..
우리는 잘 모르지만..마음 먹은대로 상대방에 읽히게 되는 것이 원래의 모양새인것 같습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껄끄러워 하면서..아닌 척 하는 것에 좀 문제가 있다는 말이지요.
말과 행동 뿐 아니라..우리의 인식도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경우 같습니다.


스물 다섯살 먹은 케이츠는 왜소증 여자입니다.
이름이 그래서 그렇지..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얼굴은 보통 크기인데..팔과 다리 몸이 극도로 작은 선천성 병을 왜소증이라고 하는군요.
어렸을때..케이츠 아버지가 그녀를 미국으로 입양 보냈고..
미국인 왜소증 양부모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잘 자란 처녀가 되었습니다.
몸이 잘 자랐다는 이야기가 아니고..마음에 구김이 없이 씩씩하고 밝고 다정한 여인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나드리하는 모습..
예전 가족들과 조우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티비는 그런 것들을 시리즈로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미국으로 돌아가서는..
동네 세탁소나 슈퍼,무슨 무슨 가게들을 휘저으며 자랑하고 다니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한국에서 찍어 간 사진을 들고....

작은 몸집의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치 시냇물 소리처럼 싱그러웠습니다.
성장기를 미국에서 보냈으며..미국식 사고에 미국말 밖에 못한다하더라도..
하는 행동거지,표정 하나 하나가 어쩔 수 없이 한국인임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성격에 얌전하고 진지하고..불편하지만 열정적인 모습..
자신의 인생에 대한 꿈과 열정이 있는 건강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렇게 잘 컸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이 이야기에서 논리의 연장선을 가지게 될 겁니다.
가난한 그녀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어려웠다지만..
그녀를 특별히 미국으로 입양 보낸 것은 너무 잘 한 일이라는 것을요.
당연히 엄청 잘 한 일이지요.
가난하지 않았더라도..그녀가 한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면..그녀의 삶은 지금 암울하게 쳐져 있을 게 뻔하니까요.
사회적인 질시와 냉대로 죽을 맛으로 살고 있을 것이며
변변한 직업도 가질 수 없을 것이고..희망이라고는 없는 절망의 질곡을 헤메는 인생이 되어 있겠지요.
실 생활에서나 매스컴에도 잘 눈에 띄지 않을 뿐,엄청나게 많은 장애인들이 숨어서 살고 있을 겁니다.
엄청나게 많은 수가 있을텐데..장애인은 시내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케이츠 같은 여인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는 결론이겠지요.

여기서..
케이츠라는 장애 여성의 경우를 두고
미국사회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따져 보고 싶습니다.
미국사회는 건강하고 우리나라는 그저 보통이다라고 볼 수 있겠지만..
아닐 겁니다.
미국사회가 보통이고 우리사회는 미개한 사회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장애가 있는 어린아이가 다른 비장애인과 똑같이 살아 갈 수 없게 만든 것은..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제도와 인습의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미국인들이 보기에 아마 야만적인 모습이겠지요.

티비 방송은..
한국에서 직장생활하고 있는 케이츠의 정상인 여동생 모습에서만은 흐릿하게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습니다.
숨겨져 있던,장애인 언니가 드러나는 것이 과년한 처자 입장에서는 버거웠을까요?
그 여동생이 요구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 여동생의 적절치 못한 판단이라고 못마땅해 하기 보다는..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것 같아 깝깝했을 뿐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자유로울,우리나라 사람은 많지 않아 뵙니다.

미국에서 같이 건너온 왜소증의 양어머니도 얼굴이 밝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우게 마련입니다만..
착하고 편한 보통 아줌마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왜소증으로 평생 힘들었을텐데..왜소증에 걸린 어린아이를 입양 받는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왜소증이 평생의 한이 되어 지긋지긋할 만 한 데..
같은 왜소증의 아이를 데려다가 사랑으로 잘 키운다..
상상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우리나라에 사는 나는.....

25살의 케이츠를 두고..
그 동안의 시간을 축약해서..비교한다면..결과적으로..
이 사회는 폭력의 사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힘들어 하지만..밝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입양간 케이츠와
절망하고 비관하고 있을..입양 가지 않은 가상의 케이츠..
우리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모습에서..
입양 가지 않은 가상의 케이츠를 구박하고 업수이 여기고 있었습니다.
한 명의 멋진 여성으로 자란 케이츠가..미국이란 동네에 살고 있다면..
우리가 배척한..입양가지 않은 가상의 케이츠는
수백만명이라는 숫자로  이 나라 이 땅에 살아지고 있습니다.
 
한 명의 인격체를 평생 기죽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무언의 폭력.
비관하다가 죽게 되는 사회 분위기.
우리는..실상은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양새로 살아 왔다는 의미인가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두 사회에 사는 아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차이 날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자선과 선행..위선적으로 살아갈 뿐..
결과적으로..폭력 집단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합니다.
결과적으로..우리는 집단 린치를 가하고 있었다는 반증 아닌가요?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올바르게 잘 살아왔는데..
별안간 폭력배로 몰리니까..기분이 나쁘시겠군요.
그러나..분명한 것은..우리중에서..
'집 값 떨어진다..가까이 오지마라..'
'함께 놀지 마라'
그런 말을 해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누가 돈 달라고 했나요?..괜히 불안해 하고..회피하려고 했으며..
TABOO性 선입견으로 필요이상으로 거북해 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발가락 하나 없어도 다리를 절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가락 하나 다쳐서..그래서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배척하고 멸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장애 부분..그 핸디캡만을 인정하고,합리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가졌던가를 되돌아 봐야 할 같습니다.
저와 달리..일찍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잘 대처하신 분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알게 모르게..이 도시의 율법이고 패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시스템의 문제이고..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구태 악습 때문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농경사회였습니다.
극도의 체력을 요하는 노동력과 불편하지 않은 사지육신의 기민함이 꼭 필요했겠지요.
육체 노동만이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편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겠고..
그렇지 않으면..사람 구실 못한다고 배척을 받았을 거구요.
그에 따라 제도나 인습이 만들어 졌을 거구요.
질시와 배척..
장애인은 사람 취급 안한것이 그것입니다.
굶어죽는 일도 비일비재한 세상..먹고 사는 일이 너무도 심각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요.
내가 죽고 옆에 가족이 죽어 나가는  마당에..인본주의니 휴매니즘이니를 따질 여력이 없을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대부분 그런 힘든 노동으로 살고 있지 않은 세상에 왔습니다.
먹고 살 만해 졌고..
이른바..정보화 사회..경박단소 생산품을 만들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이 된지도 꽤 됩니다만..
우리의 인식은 아직도 예전 조선시대 농사짓는 마인드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또 다른 생각이 스멀거립니다.
강한 자에게 비굴하고..약자에게 잔인한..
그런 비겁함이 우리의 기질이라서 그런가..하는 의혹을 갖게 합니다.
옛날 전제주의 시대에는 우리가 주로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 목숨 우습게 알 때에 일입니다만.
또..최근까지..
비겁하게..남의 불행을 즐긴 흔적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고..비열하게 낄낄대던 모습이 아직 우리의 모습입니다.
서어커스의 어릿광대의 모습으로는 인정하고 있었으니까요.즐거이.....
중국에 백두산 관광 가서는..조선족 안내인에게 한 달 벌이가 얼마나 되느냐고..
꼭 물어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 눈을 뜨고..비교해 보고 만족하는 사람의 모습에서도..역시..
지금의 모습에서 옛 사람의 비열함이 엿보이니까요.

겉으로는 아닌척 시치미 떼고 있지만..
속내는 아직도 그런 비열함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원시적 힘의 논리가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의 인간 영혼은 천부인권이라고 인식한 서구는  선진 사회일 것이고..
그 까짓..발가락 하나 없을 뿐인 데..
영혼이 없는듯 무시를 당하는 이 사회는 미개 사회라고 해야 맞아 뵙니다.

올록볼록 점자 보도블럭이 의무화되어 있는 듯 하고..
지하철 계단 리프트는 거의 설치되었지만..
그러나 그 보도 블럭을 사용하는 맹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
지체 장애자가 리프트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시설이나 제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더 중요한 듯 합니다.
별스럽게 쳐다 보는 시선이 무서워 안나오는데야..그 까짓 보도블럭이며 리프트가 뭔 소용이겠습니까.
케이츠처럼..한국서 동생들과 찍은 사진을 들고 동네를 휘젓고 다닐 수 있어야 그런 것이 필요하겠지요.
무뚝뚝하게 생겼지만..케이츠의 수다를 가만히 들어 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그리고 다정한 질문도 던지는 양코배기 동네 아저씨의 시선이 있어야 겠지요.
살 찐 그 양코배기 아저씨를 생각하니..
부끄러운 생각이 몰려듭니다.

장애인을 받들어 모시고 살거나 우대하거나 그럴 수 없습니다.
분명히 얘기해서..장애인은 정상인과 비교해서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그 장애 부분만 인정하라는 이야기지요.
솔직히.. 약육강식의 이 세상에..
핸디캡 있는 사람을 떠받들고 살라는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되도않는 위선을 이야기 하기 보다..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서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미국 어느 팝 술집에서 다리를 저는 남자에게..어느 멀쩡한 남자가 다가와..
"어이..쩔룩바리..잘 지내고 있나?" 하더랩니다.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은..이제 무슨 큰 일이 벌어지겠거니..긴장을 했다는 거구요.
그러나 절름바리 그 남자는 싱긋이 웃으며.."어서 오게..한 잔 하게나..."했다는 거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절름바리이면..다리저는 핸디캡만을 인정하는 거지요.
안경잽이면..눈 나쁜 것만을 핸디캡으로 인정하듯이....
합리적이고 솔직하고 건강한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상황을 보고..우리 사람은 이제 큰 일 났다고 겁을 먹은 잠깐의 해프닝..
그 부분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발..자신의  신체부위에  어느 부분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라는 이야기지요.
그래서..그 만큼 활동에 장애가 되는 것..
단, 그것만 장애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사람 자체를 껄끄러워 하거나 두려워 하거나 배척하거나..혹시 인격을 무시하거나..
더우기 영혼을 부정하는 일이 있으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사람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누구나 피상적인 이야기는 합니다.
옳은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 타부적 선입관을 바꾸기에는 쉬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논리적 이성적 영역이 아니고..무조건적 감정적 영역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별러서 캠페인을 해야 할 듯 싶습니다.
사람들 마음 바꾸는데..매스컴이 그것 잘하니까요..
매스컴이 나섰으면 하는 일이겠지요.


엄지 손가락만한 엄지공주.
잠자리는 엄지공주를 사랑했습니다.
심술쟁이 풍뎅이는..
그것을 질투하여 잠자리를 자꾸만 꼬드겼습니다.
"잠자리야..엄지공주는 밉게 생겼는데..왜 엄지공주를 좋아하니?"
잠자리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풍뎅이는 자꾸만 이야기 했습니다.
"엄지공주는 미워요...."
"모두들 엄지공주를 싫어하는데...."
풍뎅이이 뿐 아니라 모두가 다 엄지공주를 미워한다는 말을 듣고는..
잠자리도 차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나중에는 잠자리도 엄지공주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엄지공주는 잠자리에게도 버림을 받았어요.


ㅎㅎㅎㅎ...무슨 이야기냐구요?
대중은 잠자리처럼 우매하고
인습은 어리석은 잠자리의 작품일 때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대명천지의 세상..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좋은 일이고..옳은 일이고..그것이 나 자신에게도 이득임을 모두 알고 있는 세상..
이미 우리의 어리석음을 인식했으니..그것을 벗어나는 것도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 개선 할 수 있겠지요.
풍뎅이에게 시켜서..자꾸 '엄지공주 예쁘다'라고 하게 하는 수밖에....

엊그제가 예수님 부활절이고 또한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오늘의 의미는..일상에서의 우리의 부활이겠지요.
예수님 곁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의미의 거듭나기 일겁니다.
우리가 더불어 사는 세상..
우리의 인식으로 해서 상처입고 억울 속에 지내는 사람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나 혼자라도..어둑한 마음을 벗어 내고 밝은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회 분위기가 그리 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케이츠의..하이톤의 밝은 웃음소리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