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만

이미지 시대.('03./ 6/20)

산책길에서 2004. 2. 8. 13:29

앞으로는 이미지 시대가 된다고 하던데....
(2003. 6.20)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요?
우리의 문화는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 것인지....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 결과를 얼핏 본 적이 있습니다.
21세기에 유망 직업으로는 어떤 것이 있겠느냐는..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가하는..
아이들 감각을 알아 본 내용이었습니다.
가수 탈렌트..그런 것들이나
그 외에는..아이들 답다라고 생각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은 없는데..
그런데..의외로 만화가를 선호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야 아이들이 만화를 많이 보는 나이대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지만..
글쎄요..세태가 많이 변하긴 한 모양입니다.
우리때도 좋아했고 많이 보기도 했는데..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나이들면서 태도도 돌변해서 엄숙한 표정으로들 바뀌었구요.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미래는 이미지의 세상이 된다고 합니다.
글이나 문자가 없어지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이미지가 주종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합니다.
만화도 이미지를 수단으로 하는 한 장르라고 할 수 있겠고..
아이들이 선호하는대로 세상이 바뀌게 되겠지요.
요즘 아이들은..커서 근엄한 표정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기도 하구요.

만화..그림..사진..기호..아이콘..상징..축약..
참신한 아이들 머리는 그런 것들을 더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런 세상이 되겠지요.


아이들의 취향뿐 아니라..
이미 이 도시는 상징과 기호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도시에는 이미 문자보다는 이미지를 통한 의사전달 수단이 더 많습니다.
글로 서술되어지는 것은..도시의 빠른 속도속에서는 읽혀지질 않습니다.
다만 축약된 이니셜이 이따금 쓰일 뿐입니다.

명쾌하고 단순한 기준들..
노란선은 결코 넘어가면 안됩니다.
하얀 실선은 될 수 있으면 침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화살표는 가야 할 방향을 지시합니다.
녹색 색깔은 진행을..적색은 정지를 의미합니다.
도시를 다니려면 그 상징과 기호를 알아야 합니다.
화장실에 화장실이라고 써있으면 촌스럽습니다.
빨간 여자와 파란 남자가 그려져 있음을 보고
화장실이라고 인식하는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업은 자기들만의 기업 이미지를 만들어서 홍보를 합니다.
작은 물건을 사더라도 그 회사의 이미지가 찍혀있는 껍데기를 확인합니다.
글자를 보지 않고 색깔과 그 회사 이미지만 보게 되지요.

문자가 있기는 하지만..너무 길어서인지..쓰임이 별로 없습니다.
축약하고 단순화해서..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함축의 이미지를 만듭니다.
숫자로 코드화 된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축약을 해서 간단하게 하는 것이 이 도시에 맞습니다.

엘리베이터는 화살표시 이미지를 눌러야 합니다.
청소아줌마가 8층에서 1층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는 지금 1층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8층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그 아주머니는 윗방향 버튼을 누룹니다.
1층에 있는 것을 8층으로 끌어 올리고 싶은 생각에서 이겠지요
그것은 도시에 적응이 미숙한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아주머니는 자신이 내려 가려는 생각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아래 화살표의 버튼을 눌러야 맞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도시에 사는 노하우입니다.

엘리베이터 사용 설명서 그런 것 없습니다.
도시에는 문자가 필요없고..상징과 기호,숫자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현명해서 그것들을 얼핏보고도 다들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도시는..
이미 문자나 말로 하는 서술식 설명이 없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는 사람은 잘 살고..모르면 그렇지 못한 곳입니다.
아니..시간이 흘러 익숙해지면 왠만한 사람들은 다 잘 적응하고 살게 되지요.

그러나
도시의 시스템은 매우 복잡한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밀림에서 방금 돌아 온 타잔에게 도시를 제대로 알려 주기 위해서는
아마 집채만한 분량의 서술식 교육서가 있어야 겠지요.
그런 복잡한 시스템이지만..어디에든 도시를 살아가는 노하우를 가르치는 곳이 없고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단 거주지역인 도시에 대한 사용 설명서는 없습니다.
복잡함에 비해 문자가 거의 없는 곳..
도시가 더 선진화될 수록..더 번화해질 수록..문자가 더 귀해집니다.


각종 미디어는 어떨까요.
문자만이 전달 수단이었던 미디어의 세계도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미디어 세계는 이미지가 휘어잡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활자 매체는 이제 쇠락할 것이고 이미지가 그 자리를 꿰 찰 것이라는군요.
그것이 가능하겠는가..의심을 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도시는 이미 이미지화되었고
문화도 곧 그에 따라가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고매한 문화는 점점 이 도시의 모습과 닮아 갑니다.
도시가 그렇듯이..
바쁜 현대인은 모든 행동거지를 도시의 속성대로 바꿔가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도 바쁘고 분주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척박한 모양새입니다.
저처럼 오로지 글자만 쳐서 의사 전달하는 것에 대해서 좀 거북해 합니다.
긴 서술은 갑갑증을 일으키게 되고..상대방에 대한 실례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단순화하고..적절한 이미지가 섞여야 그럴듯해 보인다고 합니다.
그것이 세련되게 보인다는 점이..그게 이미 추세라는 이야기겠지요.

컴퓨터에 맞는 이미지만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시인이 있었고 소설가가 있었다면..
이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더 각광을 받는 세상이 오고 있나 봅니다.
그렇게 바뀌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어린왕자에 나오는 삽화를 많이 넣고 있지요?
이미지 시대라고 하니까..
이번 글에는 그렇게 해 봅니다.


자신의 글에 자신이 삽화를 그린 사람이 꽤 많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것은 쌩땍쥐베리가 제일 먼저입니다.
어린왕자를 안읽어 본 사람이 드물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평생 기억하는 사람이 꽤나 많을 거구요.
순수에 대한 그리움....

제 친구는 평생 시라는 것을 딱 한 번 써봤다고 합니다.
어린왕자에게 반해서 연애를 했었다는 이야기지요.

은빛 노을 몇 점을 어깨에 얹고
저 아름다운 들판을 지나오는
어린왕자야 어린왕자야

그 빛나는 가슴으로
내 마음 깊은 곳 별빛이 되거라
내 마음 깊은 곳 별빛이 되거라
오늘도 이 세상에는 꽃들이 시들고
오늘도 이 세상에는 강물이 마른단다
어린왕자야 어린왕자야

너 살던 별나라 넘치는 평화로
이 세상 꽃들을 다시 피워라
너 살던 별나라 넘치는 사랑으로
이 세상 강물을 흐르게 하라
어린왕자야 어린왕자야

아!!
우리의 빛나는 순수 앞에 향기로운 바람이어라

하하하하하...훌륭한 시라구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충심이 보인다고 할까요
어린왕자에게 매료당한 절절한 사랑이 엿보여서 옮겨 봤습니다.
팍팍한 현실에서..순수와 낭만의 피안으로 끌어들였던 사건이라고 할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어릴 때 맞이한 그 간결함에 대한 충격..
꽤 신선했지요.
아세테이지를 떼어내면 그대로 묻어서 판박이 되듯..
내용이 그대로 뇌리속에 각인이 되었구요.

그것은 결국 그의 삽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삽화..
기발함이 돋보이는 삽화..
생각 나시지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얼핏 중절모의 모습이었지요.
지구본처럼 작은 별에 앉아 있는 어린왕자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절절한 외로움..
세상을 다 뒤덮을 것 같은 설명에..아름드리 바오밥나무의 거대함..

그 이전까지는 흑백 삽화의 엉성함을 구경했다면..
쌩땍쥐베리의 삽화는 칼라풀하고 이뻤지요.
그 삽화가 있어서..읽을 때의 강렬함이었고
긴 시간이 지나서 머리에 진하게 각인되어 있음도 그 삽화가 있어서 그럴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고..
연애를 하게 했고 시인이 되게 만들었지요.
그의 천재성이 먼저이겠습니다만..
이미지라는 것의 힘을 느끼게 한다고 할까요.

문자와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해서 성공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뇌에서 수용하는 기관이 서로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논리(문자)는 왼쪽 뇌..이미지는 오른쪽 뇌에서 주로 수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스테레오로 접수하게 되니까..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글을 몰랐을 때는 책에 나오는 그림과 사진만 봅니다.
글을 알고 나서도..책에 그림과 사진이 없으면 따분해 했던 기억이 있구요.
좀 커서는 그런 그림과 사진이 유치하게 생각되었지요.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그런 그림이나 사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구요.
어려운 학문까지도 만화로 그려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음은 목격하게 됩니다.

 


세상은 어느덧 바뀌고..
지금도 꽤 많은 이미지가 문자를 대체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문자는 촌스러운 인상..
이미지 세상은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모바일 기술은 이제 문서의 필요성을 잊게 하고 있습니다.
각종 영상매체의 발달은 글이 별로 없고 말로 주로 합니다.
이미지와 도형..입체 영상으로 더욱 실감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지가 득세하는 세상으로 가는 마당에
부정적인 부분도 발견하게 됩니다.

말이 있으니 문자가 없어질 수는 없는 걸겁니다만은..
문자는 훼손되는 쪽으로..
그렇게 대세는 이미 정해진 것 같습니다.

도시의 축약과 상징,이미지들과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대로변에 있는 상점 간판과 비슷한..
우리의 즉물주의는 골치아픈 정신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이곳 인터넷도 그런 조짐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저급함 쪽으로 평준화된다고 할까요.
문자는 꼬이고 해체되고..
사용하는 단어도 단순할 뿐입니다.
사용할 단어가 몇개 필요치 않은 분위기..
아마존의 어느 부족은 20개정도의 단어만 사용한다고 하던데..
거칠은 단순성이  특징이 되려고 그러나요.

이미지가 주도하는 세상이 되는 것을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있으니 문제인가 합니다.
미디어와 이미지의 득세가
결국..글과 문자를 가볍게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진지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만들기도 하고....

이제까지는..
문자로 표현되어지는 것들은 기록과 보존의 의미가 함께해서
신중하게 쓰여졌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렇듯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의 '문자'는 가벼움에 물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형이상학을 논했던 '글'들은..
이제 그 위선의 옷을 벗어버리면서..곧바로 천박함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일회용 글이라고 할까요.
내뱉으면 허공으로 날라가는 '말'처럼..그렇게 가볍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글이 그 본래의 위상보다 필요이상으로 더 고귀하게 인정을 받다가
이제는 그 밑으로 너무 저급하게 대접 받는 것일 겁니다.

글을 담기 위한 용기로만 거의 쓰였던 종이는
이제 햄버거 포장지나 스팸메일에나 쓰이는 것이 더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글도 진지함을 잃고..그런 껍데기의 의미로 같이 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먼 훗날..
문자와 글은 문학이라는 특수분야에서나 보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지....
지금에 판소리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듯이..
먼 옛날을 그리워하는 쓰임으로 문학이 남아 있게 되는 것은 아닐지....

늙다리가 되어서 그런가요.
새로움이 주는 신선한 설레임보다는 초조함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이미지 세상의 그 강력한 파워가 세상을 흔들고 있고..
새로운 사조에 적응하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또..
가볍고 천박하고 속된 세상이 되는 것 같아서도 거북하기도 합니다.

무거운 정신활동이었던 '글'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합니다.
빽빽한 문자의 조합들을 보고 머리 속으로 형상화하는..
정신을 중시하던 때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단어를 통해 형이상학을 이해 해 나가고..
단어의 조합인 그 막연함에서 구체적으로 모양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맛이였지요.

지적 충만감이라고 할까요.
빼곡할 수록 진지해 보이기도 했구요.
그런데 이제는 그 빼곡함이 거북하다는 인식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빼곡함 곧 진지함..그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인지..
깃털처럼 가벼운 세상..진지함에 이제 신물이 났다는 이야기인지....


지적 충만감은 이제 즉물주의 세상에서는 새삼스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나 봅니다.
그래도..
이 도시의 특징이 다양성에 있으니..
예전에 '대세'에서 이제 '다양성중의 하나'로 전락한..
지적 만족을 탐해 볼 수 있겠지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세상은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고
SF영화의 미래 모습처럼 되어질지는 모르지만..
결국 적응하며 살게 되겠지요.

낙담하지는 말아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