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됨에 대하여
(2003. 8. 8)
'그렇듯 많이 쏟아낸 말들을 너는 다 책임 질 수 있는가..'
'너의 이죽거림에..너 자신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대세에 반기를 드는 너는 더 나은 세상을 알고 있는가..'
'또..너의 감각 밝힘증은 무엇인가..'
'말초적 감각에 얽매어 있는 퇴폐적 감성과 무엇이 다른가..'
'좀 더 세련되고자 하는..너의 감성 추구는 과연 옳은 일인가..'
우리네 삶이란
사람들과 함께 어울어져 살게 되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사람들의 모습과 닮고
그리고 영향을 주기도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일 것이다.사람들의 전체 모습인 사회 현상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는 것..
어쩌다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왜 그럴까..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겠고..혹간에는 비판도 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이해가 부족해서 하게 되기도 하고
자신과 다르다해서 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진실로 아끼는 마음으로 드러내 비판하는 수도 있다.
비판하기란 참 간단하다.그러나
그 비판이라는 것을 제대로 하기란..
참 어려운 노릇이기도 하다.
옳음을 주장하여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말에 행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숙제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말만 하는 것 말고..나는 행동으로도 잘 할 수 있는가?'또한..
이 세상이 필요로하는 사람은..
비판을 일삼는 사람 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다정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일 것이다.
인간만이 희망이며
희망과 더불어 인간을 바라보는 것 만이..
절망의 시대에 유일한 희망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을 알고 있으니 더 갈등이다.어찌보면..
인간이 내뱉는 비판의 대부분은 경망스러움스러움일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옳은 것 같지만 옳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 사는 세상은 시행착오 끝에..
어찌어찌하다가 제 갈 길을 접어드는..신묘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남을 잘 알지 못한다.
나와 남..사람들의 관계의 속성도 제대로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을 재단하려 하며
조각 조각 해체해서 카테고리별로 나눠 구분지으려고 한다.
사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고
그럴 자격이 없다.
나는 그저그런 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저그런 놈도 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독설은
이성과 논리로 포장되었지만
어찌보면
나와 같으냐..나와 다르냐의 문제..
세상을
내편과 내가 알지 못하는 상대편으로 구분할 능력밖에 없는 것 아닐까..한다.왜냐하면..
나는 아주 세련된 감각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결코..
이성이 감정을 극복할 수 없는..감각 밝힘증을 갖고 있으니 그렇다.내 입장일 뿐..
비판의 또 다른 얼굴은
나와 다른 세상에 대한 낯설음..이질감..두려움의
다른 표현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못마땅해서 하는 소리..
못마땅함을 이성과 논리로 펼쳐 밝히지만..
사실 못마땅함의 원류는 감정적인 것이다.
그것이 감각주의자의 비판의 한계이다.이해하고 따뜻하게 바라 보는 것이 더 먼저이어야 하는데..
언제나 입바른 소리만 하는 나..
그러면서 말 해놓고는 항상 갈등하는 나..나는 내 이성적, 지적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 스스로도 모르게..
나의 감정을 뺀지르르하게 이성적인 모양새로 둘러대고 있을 뿐이니까....그리고..
나는 못된 이기주의자이며
자기 본위로 밖에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인간이니까....
[오만한 세련 밝힘증 환자]
내가 누구인가..나 사는 이 세상에 지존일 것이다.어쩔 수 없이..
나는 이 세상에 제일 중심에 있는 것 아닌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은 돌고 있다.내가 있으므로 해서 저 태양이 존재한다.
내가 저 태양을 인식하고 불러 주므로서..저 태양은 실재한다.
나의 부재는..존재한다는 모든 것을 부인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인식하는 것만이 진실하며
내가 모르는 세상은..존재한다하여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나만큼 존중 받아야 할..수 많은 사람이 함께 살음을 안다.
나는 그것을 겉으로는 인정은 하지만..
마음 속내 깊숙히 숨긴 것이 있다.이 세상 어떤 것보다..이 세상의 모든 것 보다..나 하나가 더 존귀하다는 것을.....
이 세상의 모든 질서와 가치는 나를 통해서만 인식되어지고 판단되어진다는 것을....
그건 숨겨진 사실이며..
내게는 그것만이 진실이다.나는 모든 것을 내 본위대로 볼 수밖에..다른 방법을 모른다.
남을 이해하는 일은..
그렇게 가식하는 것이 더 세련되게 보이기 때문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나는 남을 알지 못한다.
숨기고 가식할 뿐..
선언하건데..
나는 위선자일 뿐이다.가만히 속내를 숨기고 있을 뿐이지..
누가 뭐래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가장 세련된 부류이다.이 도시에서의 질서와 가치는 내가 재판관이 되어 평가하고 가격을 매긴다.
다른 의견이나 다른 요소들은 참고 사항일 뿐..
전적으로 나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일들이다.아울러..
이 도시의 유행과 MODE는
내가 있어서 품위의 유무를 평가받고 그 우아한 멋을 인정 받는다.
내가 있어서 모두 가능한 일이다.
그렇잖으면 어림도 없다.나는 이 도시의 중심에 신망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1등 애널리스트이고 완벽한 컨설턴트이기 때문이다.나의 이런 본질적 가치를..
사실..
다른 이들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그들은 나의 위대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나는 개의치 않으려 한다.그들의 촌스러운 감각이 업그레이드 되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없어서..
그들의 무지함을 참아내기가 이제 어렵게 되었을 뿐이다.매우 세련된 모습으로 이 도시를 살아가는 나는
나의 멋진 감각이 제일 적당하다고 여기고 있다.
절묘하게도 가장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있다.너무 앞서가지도 않고..너무 진부하지도 않다.
내가 쏟아내는 말과 나의 행동들은 좀 더 자극적이고 맛깔지다.
쫄깃쫄깃..살아 움직이는 감각이 번뜩인다.
아주 대단한 세련미다.세련된 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보게 되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만화속 괴뢰군과 같은 표정..감성적이지 않고 유연하지 않고..
답답하고 무표정한 그들의 모습이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들이 있어서..
그들의 시선에서 나는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나는 이 도시에서 멋진 감성을 뽐내기를 좋아한다.
세상 사람들은 나의 이런 적절함과 세련미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 도시에서 존재하는 의미일 것이다.
나의 올바름과 앞서가는 세련됨이
그들 위에서 품위를 가질 때..
비로서 내 존재의 가치가 살아난다.
나는 그들 속에서 인정 받는 존재로 가치가 있다.
그래야만 마땅하다.나 태어나..나는 단지 나만의 의미일 수는 없다.
차라리 나는 내가 아니더라도..
그들 속에 있는 나일때..그때에만이 의미가 있다.
인정받고 존경받을 때..그 속에서만 나는 진정 나답다.이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되지 않을정도로..
나는 내가 너무나 존귀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여리디 여린 나의 존귀함을 지키는 일이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다.그러나 모색하는 대로 여의롭지는 않다.
세상은 내 맘 같지가 않다.나는 혼자 내 스스로 존엄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
나를 확인하고 실현하는 방법으로..남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니까 그렇고..
내가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그렇지만 그들은 나의 존귀함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더욱 그렇다.
나는 그 만큼 힘들게 살아내고 있다.세상에서 제일 존귀하면서도
존귀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세상은 바뀌어져야 한다.
내가 힘들이지 않고 낭패감에 씁쓸해 하지 않도록.....[이 도시에 사는 사람의 갈등]
나는 이 도시에서 나의 한계를 알고 있다.'나의 존재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어찌하여 사람들 관계에서만 나의 존재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나 혼자로는 가치가 없다.사람들 속에서만 내 가치가 보인다."내가 위선자이여서 그럴까..
어리석어서 그럴까..
오살맞을 경망증 때문일까..
신경증 영역의 심한 쏠림 때문일까..
이도저도 아니면..이 도시에 인간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내 한계라는 것은..
내가 그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나 혼자서는 존재의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고..
존중받고 싶지만..
나를 존중하지 않는 그들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의 딜레마다.
그건 참으로 드러운 일이다.그것이 내가 도시가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의 요약된 모습이다.교만한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요상한 마음 바탕을 만들어 가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내 오만의 다른 측면..
즉..내가 컴플렉스 덩어리로 변한 것은
그 연유이다.나..
오만과 컴플렉스..
경쟁심과 질투심..
가식과 허세..
질척대는 그것들의 화신..
나..도시에서..그것들이 있어서 나는 이제까지의 내가 되었고
그것들이 있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항상 나는 그의 앞서감이 부담스럽다
그의 세련됨과 그가 이뤄놓은 성취에 질투를 느낀다.
그의 세련된 성취물은..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일 뿐..
내가 막상 그를 쫒아 그것을 얻었을 때..
나는 또 다른이의 성취를 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항상 불행하다.나는 그렇게 나를 허울에 휩쓸리게 하는 그가 아무래도 싫다.
허툰 성취물과 그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성취물과 나란히 하고 웃으며 사진 찍고 있는 것이 싫다.
성취물과 그를 구분해서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그는..
내 사촌일 수도 있고..선배,후배일 수도 있고..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촌 형제는 더 이상 친척이 아니다.
경쟁자..비교 대상일 뿐이다.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나는 이 도시에서의 관계들에서..질투심으로 몸을 떨며 살고 있다.
도시는 소란스러우면서 피상적으로 얽혀 있어서 나를 스트레스가 쌓이게 하는 곳이고..
또한..도시이기 때문에 군중 속에서 익명성의 안온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익명에 편해 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겠지.백화점 앞에 거대한 인파..
사람들 손 독 타있는 빌딩 회전문..
도시 지하철의 분주한 왕래..그 레일 위..강철의 맨질거림..
깡동맞게 생긴 도시의 시스템..도시는 내게 오만함을 펼칠 수 있게 해 주고
컴플렉스로 안절부절 못하게 하고
질투심에 몸서리치게도 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방패가 되어줘서..안온한 도피처도 되기도 한다.
이 도시에서..
나는 그렇게 억압의 너울 속에서 산다.
참 드러운 일지만..그렇게 산다.대신에..
다른이들과 차별화를 꿈꾸면서..
멋지고 귀한 '세련됨'을 추구하면서..
그렇게..대신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세상 모든 세련된 것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오늘도
나는 경망된 마음이 되어
'세련됨'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한다.
세련됨 앞에서는 나는 분별력을 잃고 주눅이 들기도 하며
그 막강한 파워에 몰입하고 그리고 신봉한다.세련됨은 내 마음 속 가벼움과 간사함에 들어와 산다.
세련된 모습으로....세련됨은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의 삶의 본질이며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세련미라는 것..
세련됨의 속성은 인위적이라는 데에 있다.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이지만
생선과 같아서 특히 신선해야만 한다.
매끄러워야 하며 적절한 파격의 아름다움도 있고..
너무 생경해서도 안되고 적절한 익숙함도 있어야 한다.그리고 부단히 변한다는 특징도 있다.
그것이 흔해진다면..
그 순간 감쪽같이 세련미는 사라진다.그래서
세련된 보기 좋음은 유행이며 모드일 수밖에 없다.
모든이들이 신봉해 마지않는 이 세련됨이라는 것은
그 지속 기간에 문제가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덕쟁이처럼 변하고 요사스럽다.한편으로
세련됨이 두렵기도 하다.
신선하고 아름답지만 태생적으로 결국은 진부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매우 끌리지만 금방 혹했듯이 금방 시들해 진다
결국 나중에는 지겨워진다
그래서 나는 세련됨의 가벼움을 믿지 않으려고
지난한 몸부림을 쳐 본다.나는 세련됨이 갖는 얍삽함을 눈치채고 있다.
그건 세련되게 세련된 '세련됨'이지만
곧.. 촌스럽게 촌스런 '촌스러움'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안다.약간의 시간성이 부여되었을 뿐인데..
같은 것을 두고
어떻게 열광에서 멸시로 쉽게 바뀔 수 있는가.그건 달콤한 꿀맛이다
맨첨에는 달콤하지만
같은 크기로는 더 이상 달콤해 하지 않는다
좀 더 강한 자극을 위해 더 많은 양의 꿀을 필요로 한다
나중에 아무런 감흥이 없어지게 되고....
[세련미는 차별화되어야 제 맛이다]
세련미라는 것은 이 도시의 미덕이며 가치이다.
변덕스럽고 탐욕스런 대중의 취향에 맞춰 끝없이 새로움을 창출하는 것..
마치 업보처럼..그것은 이미 대세이다.불가사의 하지 않은가....
그것이 귀한 것일 경우에는 열광하지만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흔한 것이 되었을때는
거들떠 보기 싫은 천덕꾸러기가 되어진다는 사실....그렇게 생겨먹은 세련미라는 것을 '아름다움'의 영역에 넣을 수 있을까?
아름답다라고 열광하지만..
그 속성이 바뀐 것이 없음에도..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혹은 어중이 떠중이 모두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로..
이미 아름다움이 아니며..오히려 더러움이 된다는 것은
미적 추구의 영역이 아니고 사회적 의식..
혹은 관계의 역학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세련됨'은 '관계의 찌꺼기'이었음을 알아차린다.자신 본위로 세상을 바라 볼 수 밖에 다른 여력이 없는 교만한 우리 인간이
이곳 수십억 인간들 속에서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없어서..
그런 낭패감의 반작용으로 끝없는 세련됨을 원하는 것일 것이다.저 태양이 존재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세상의 모든 가치 합계보다 더 존엄함을 부르짖고 싶은데..
그렇듯 교만한 것이 인간인데..
그런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이 현실이 야속할 것이다.
자신의 존엄이 부인되는 것 같아서..전전긍긍하게 되고..
허울이나마 귀족처럼 행세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바탕으로 한 심미안인 셈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단연코 거부하게 될 것이다.존귀함을 인정 받아야 마땅함에도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 끄트머리에 컴플렉스가 맺혀지고 그것이 모두의 감각이 되었을 것이다.
보편적인 것으로부터의 차별화를 꾀하는 행위일 것이다.
명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부류가 있다고 들었다.명품(Classic)은
더 이상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표방하지 않는다.
더 이상 불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명칭과 어긋나는 일이지만..명품은 유행과 모드를 만든다.
Classic 명품은 세련되었으며 비싸다는 특성만으로
보편적인 것으로부터의 차별화되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과 긍지를 심어 주고 있다.익명성 세상에서는 그의 이력서를 훔쳐보지 않는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간에..그의 지금의 모습이 전부일 뿐이다.
사람이 많아져서..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익명성을 보장 받는다는 것은
그럴듯한 신분 세탁이 되는 셈이다.그런 익명성 세상에서는 다른 것 필요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명품만이 그 사람을 대변하게 된다.그 전에는 질투심에 몸을 떨었지만..
명품 라벨에 쏠리는 상대의 시선에서 희열을 느끼며..
이전의 컴플렉스를 뒤집어 버린다.오만의 영역으로....
명품족간의 '우리 의식'도 생기고..
뽐내고 싶어지는 마음도 참는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욕할 수 없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신봉하는'세련미'가 그들이 추구하는 그런 것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천박함과 다르지 않은 바탕을 나는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 나무의 뿌리에서 올라 온 엣센스를 먹고 그들은 저쪽 가지가 되었고
나는 이쪽 가지가 되었을 뿐이다.그래도..
명품족은 천박하기는 해도..솔직하고 단순한 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 동안 나는 의뭉스런 위선자일 뿐이었다.
질투심에서 그냥 욕을 해대고 있었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세련됨에 대한 애탐을 버린다면 나는 무엇을 미덕으로 삼아서 살아갈까....낯설고 착하고 이질적 세상을.. 따르고 함께 할 수 있을까....
이제
세련됨을 극복하고
참 자유를 얻어야 하는데..내 근본을 부정하고 뒤집어 엎어야 하는 일..
나는 평생을 휩쓸려 살아온 그 탐욕에서 벗어날 길을
아직 알지 못한다.
'세련됨에 대하여'에 대한 변명
(2003. 8.10)
주말 잘 보내고 계십니까.'세련됨에 대하여'
앞의 주제에 대해 많은 분들이 말씀들을 해 주시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 생각이 한쪽으로 쏠렸던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이야기 하는 방향에 대한 반성도 하게 합니다.
그런데..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세련된 것들'에 대해서..
사실 제 머리 속에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생각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상황을..이야기로 표현하다보니 문제가 좀 있는 것 같구요.표현을 잘못했다기 보다는
제 머리속도 모호하고 막연한 실타래로 얽혀 있으니
어차피 잘 될 수 없었던 화두였었습니다.우선..
제대로 본다면..단어 선택도 문제가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그렇고 그런 상태를..
저는 '세련'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그러나
그 단어는 적절치 않아 뵙니다.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적당한 다른 것이 생각 나지 않아서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저는 글에서..
'세련'된 것을 '세련'되게 보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라는 식으로 밖에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 논리는 잘못되었습니다.
세련 = 세련 ..논리상으로는 당연한 논리입니다.
세련 ≠세련 ..저의 이런 식의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입니다.적당한 단어를 알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정확한 서술적인 표현도 못해서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 엉켜 있어서요.여느 진취적인 사람이면 의례히 가지게 되는 기준점..
그것은 우리가
..좋은데..괜찮은데..세련미가 있다..
멋지다..촌스럽지 않다..부티나게 보인다..라고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우리의 평가 잣대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사실..
여기서는 그런 것을 '세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단어가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일취월장 발전하는 우리의 세련된 심미안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므로서 만들어지는
현대인의 이상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아무리 완벽한 환경에서 자라 나왔어도..
많은 숫자의 구성원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상한 심리 상태..컴플렉스를 갖게 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컴플렉스 심하다보면..
이상 심리가 되고..이상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것이 사회적으로 대중성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런 대세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회를 몰아가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요.예전에는 없었을 컴플렉스..
예전에는 없었을 심미안..
그게 우리를 옭조아 매고 불행하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우리의 잣대를..
저는 '세련'을 희구하는 현대인의 습속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세련됨을 희구하는 마음..
그러나 지금보다 더 세련되어 질 것이고..
더 희구하게 될 것이고..
그 끝이 어디 일까요?그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상상의 한계에서..
문득 파멸이라는 상황이 연상되게 되었습니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두려움의 영역이었습니다.
나이 먹은 이의..발전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한다면..
그런 평가에는 반대합니다.발전과 진보..
그건 현대인의 본능입니다만..저는 우선 본원적인 목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두루 함께 그리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우리가 추구하는 발전의 방향은..
행복을 위한다거나 인간적이기 보다는..
그 멋지고 세련된 쪽으로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서로를 의식하면서..서로 경쟁에만 몰두하면서..
본원적인 삶의 방향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사회 병리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런 마인드로는
다중이 서로 경쟁하면서 모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많은 병폐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모르긴 해도..
꽤 오래 물고 늘어지게 될 화두일 것 같습니다.꽤나 광범위합니다.
이 도시에서 우월하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것들 모두..
남들과 비교되어지는 평가 잣대..
앞으로 발전을 모색하는 방향으로서의 기준점..근본적인 부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심미안,사고 기준,가치관..
그런 것들이 될텐데..
쉽지만은 않겠지요.뿌리부터 부정하고 들어가니..
그 뿌리 위에서 사고하는 입장에..
쉽게 구체화되어지지도 않고..
잘 되어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보시는 분들께..공감을 얻기도 힘들 것 같구요.
내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려는 이야기가 되다 보니..
쇼킹하고 혁명적 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내가 믿어 신봉하고 있는 있는 것들을 이따금 부정할 수 있는
그런 유연성을 갖자는 의미에서요.토탈리콜..매트릭스..공각기동대(일본만화)..
모두 잘 모르는 영화들입니다.
그런데..그것들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더군요.내가 알고 있고 경험한 것들이
사실이 아니고
허구일 수 있다는 것에 촛점이 맞춰진 영화인 것 같습니다만....잘 모르면서 이야기 하려니
좀 어렵군요.
다른 것 예를 들만한 것도 생각나는 게 없고....토탈리콜과 메트릭스는 티비 영화에서
전체 다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 봤구요.
공각 기동대는 말만 들었어요.세상은 바뀌어..
내가 확신하는 것도..
그 어떤 것에 의해서 바뀔 수 있는 세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4막 9장의(49살)연극 무대일 수 있는 것..
나는 언제고 이 연극무대를 떠나서 다른 것을 하며 지금을 회상하게 되는 것 아닌가..
아니 회상을 못할 수도 있겠고....나중에는 혹시 영화에 출연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것이 되어서..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을 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을 요.동양쪽에는 옛날부터 그런 류의 이야기가 꽤 많았습니다.
달콤한 세상을 살았는데..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건 꿈이었다는 이야기..
나무하러 와서 꿈을 꾸었는데..그 기간동안 도끼 자루가 썩었다나....내가 인식하고 있는 지금 이 현실이..혹시 꿈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을 살면서 지금의 이것을 부정하거나 회의한다면
글쎄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을 겁니다.힘껏 몸부딛혀 살고 있지만..
혹시 모르지요.
나중에 적나라하게 분석되어질 날이 있을지....4막 9장 때는 무엇을 잘못했고 5막 1장에는 무엇을 잘했고..
9막 9장에서는 대단원을 맞았다..그렇게.....아마 그런 때가 있다면..
지금의 나의 시각이나 판단 기준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나의 지금 생각의 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혹시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여러 가능성을 조금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어쩌면 그만큼의 혁명적 발상의 전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련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요......
미친 생각이 될지..잘 정리된 생각이 될지 모르지만..
더 궁리 해 보겠습니다.어렵게 모색해서..그거 해서 뭐하냐구요?
뭐..돈 되는것도 아니고..또한 널리 주장하고 싶은 욕구도 없습니다.
맨날 흔들거리면서 살고 있는 제가 좀 단단해지는..
그런 효과는 얻게 되겠지요.
주무시고 있을 시간이겠군요.주말이라서 너무 이른 시간에 일어났고..
주절 주절 아무 이야기나 늘어 놓게 되었습니다.편하고 고은 꿈 꾸고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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