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만

工夫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

산책길에서 2004. 2. 14. 00:09


공부라는 말

TV에 공부라는 한자가 나왔던데..
그런데..그게 여간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동안 공부를 한다고 한 것 같았는데..
전혀 모르는 분야를 지나온 것처럼 당혹스럽습니다.
공부..

한자로..
工夫..라고 쓰나 봅니다.

이제까지..
공부는 공부였지..工夫는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막연한 단어..공부..

같은 한자라도 여러 뜻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렸을때..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했고..
한다고 한 것이 공부인데..
그 말이 너무 어렵다는 점을..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게 되다니요.

工 .. 장인 공 (뭘 만드는 사람)
夫 .. 사내 부

뭘 만드는 남자라는 말 뜻인데..
그게 우리가 해왔던 '공부'와 무슨 상관일까요?
너무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뜻도 모르면서..
사실..틀리게 알고 있으면서..그 말을 평생 써 오고 있었으니.....

 

내가 공부 못한 것이..혹시 공부라는 말이 어려워서는 아니었을까

우리네가 지금도..
자식이든 본인이든..죽기 살기로 신경 쓰는 것이 공부라는 것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의 뜻이 머릿속에서 간단히 개념 정리가 되지않는 말이었다니 말입니다.

문득..
공부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서..
내가 공부를 못했던 것은 아닐까..
치사한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도 드는군요.

그건.. 말도 안되는 핑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관계가 없는 말은 아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말(言語)이 없으면..생각(思考)도 없다

말과 단어들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삶에 있어서 엄청 중요한 것들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고..
상상과 연상의 기초 벽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언어는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언어만큼만..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은..
언어와 이미지로 갈무리되고
사고력도 그것으로 좌우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어가 중요합니다.

이미지는 언어로 해서 다양해지고 폭이 넓어지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언어와 이미지가 상호 교감하면서..한 사람의 생각이 만들어 지는 것이겠지요.

19개의 단어만 쓰는 아마존 원주민 이야기를 들을 적이 있습니다.
표현의 한계가 있으니..생활이나 생각도 단순할 겁니다.
심플해서 속내는 편할 지 모르지만..
몇만년전의 크로마뇽인처럼..그렇게 사는 걸 겁니다.

인류 문명은 언어로 발달했다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겁니다.
풍요하던가..괴롭던가..언어의 발달이 그것을 좌우했다고 봐야 합니다.
사람의 지적 능력은 언어와 함께 하니까요.
언어가 없으면 생각이나 인식도 없으니까요.

 

말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쉽게 행동으로 접근시킬 수 있을텐데...

한자에서 나온 단어들은 대부분 그 한자 뜻에 따라 단어의 뜻도 가늠이 됩니다.
아마 대부분의 단어들이 그렇겠지요.
농사,학습,출세,회사,사회,인간,탐욕,식구,가족..
그런 것 처럼..익숙하게 사용하면서..뜻이 연상되는 말들입니다.
주로 그런 말들만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단어들만이 살아남고..그렇지 않고 헷갈리거나 어려운 것은
사용하는 단어로서의 수명을 잃어버리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익숙하게 뜻을 알아먹을 수 있는 단어만 남아서 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알게 모르게 사어(死語)가 되는 것일 겁니다.

뜻 글자라서 그렇다나요..원래 한자라는 문자의 수는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물마다의 한자가 있어야 하니..골치 아픈 문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중국이란 나라도..
뭘하려고 해도..문자 때문에 될 일도 안된다고 생각해서..
약어로 만든 말을 정상 통용 문자로 바꿔 쓰고 있는지..꽤 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사용하는 한자만 사용하는 셈입니다.
사용 빈도가 떨어지면 아예 안쓰게 되고..그러면서 소멸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려운 한자를 차용해다가 어렵게 쓸 필요없게 된 거지요.

예전에는 먹물끼 나타내려고..
일부러 어려운 말을 골라 쓰거나..현학(玄學)적인 표현을 쓰는 것을 
멋으로 알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어려운 한자 많이 알거나  자주 쓴다고 존경 받던 시절은 이미 아니니까요.

 우리가 쓰는 단어의 태반은 그 어원이 한자에 연유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뜻문자의 장점을 차용한 독특하고 훌륭한 소리말이 우리나라 말인가 합니다.
중국,우리나라,일본이 쓰는 한자가 조금씩 다릅니다.
현지에서..토속화되는 의미이겠고..
문화와 의식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코드(암호)의 의미도 되는 것 같습니다. 

언어의 기능을 그런 단계까지 관찰한다면..
말이나 문자가 갖는 중요한 개념을 하나 짚어야 합니다.
그 단어를 접했을때..해당 상황이 연상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차피 한자권 언어체계임을 부정할 수는 없고..
왠만한 단어는 그 단어의 한자 뜻을 알고 있으니..
무엇하는 이야기로구나..연상이 된다고 할까요.

사물의 명칭을 기억하고 인식하는 데에는..
연상되는 이미지와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봤던 새소미스트리트라는 유년기 아이들 프로그램을 봤더니..
drop 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그 단어를 물방울로 이미지화해서 나무에서 떨어뜨리더라구요.
'drop' = ' 물방울..떨어지다' 라고 백번 되뇌이는 것보다..
그런 이미지와 시각화한 것이 아이들 뇌리에 곧바로 스며들것이라 것..당연한 이야기겠지요.
그후에 우리나라도 그런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어요.
세상 좋아진거지요.

우리 나라는..
한자의 뜻 문자를 차용하기 때문에..
사물을 인식하는 데에..영어권의 메마른 음절보다는 훨씬 나은 것 아닌가요.
머리속에서 이미지화하고 연상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공부 잘하는 애들일 수록..
특별하게 자기나름대로 이미지화하고 연상하는 능력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물교사는 수업내용을 설명하고 나서..
추가해서..그것을 외울 수 있는 주문(呪文)을 개발해서 알려 주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앞 글자만 이어서 무조건 외우라는 형식이 있는가 하면..
연상할 수 있도록 연상법을 꼭 곁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치한 방법이지만..그게 지금까지 기억나기도 하니..좋은 일인 거지요.

1..2..3..4..5..6..
숫자를 숫자 자체만을 인식하고 기억한다면..좀 막연합니다.
누구나  5에 대한 단단한 연상이 있습니다. 딱 가운데 숫자.
3은.. 가운데 숫자인 5에..60%..라고 인식하던가..그 숫자가 가지는 독특한 기억과 링크시는등..
그런 식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연상 습관이 있어서..
그 숫자 자체만으로 인식과 연상법이 함께 어울어져 더 오롯이 기억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시했던 '공부'라는 언어는..
그런 체계에도 들지 않고..
그냥 막무가내로..막연하게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연상되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메마른 음절인 것 밖에.....

지나고 나서 보니..
제 입장에서는..공부라는 단어는 그런 연상 작용이 불가능한 채 오늘에 와 있네요.
지금 나이에 그걸 따져서 뭣에 쓸것은 아니지만..
깝깝한 생각이 드는군요.좀 억울하기도 하구요.

한 번도 工夫를 한 적은 없고..
그때 그때 과목 익힘을 했을 뿐이니까요.
시험 잘 보기 위해서 노력해 온 시간들임이 억울하다는 생각입니다.

'공부'라는 뜻으로..학과목을 파악하고 익히는 것으로 인식했으니..제대로 한 것이고..
이제와서..'공부'라는 말에 시비걸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그 말의 막연함 때문에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 싶습니다.

이른바..우리가 쓰는 한자어의 대부분은..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그 구성이 쉽습니다.
농부..상인..회사..서점..
한자어이지만 낱개의 한자의 뜻을 대충 알고 있으니 쉽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지금에도 쓰이는 것이 아직 여러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대부분..
중국 고사에 나오는 사례를 변형없이 고스란히 차용했기 때문입니다.

공부라는 말도..
정확지는 않습니다만..
중국 서경인가에 나오는 한 고사에 나온 말을 고스란히 따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부지리..새옹지마..계륵..불혹..기우..
그런 것 처럼..
이른바 고사에서 나온 말들이 꽤 있습니다만..
그래도..그것들은..'공부'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구체화되거나 머리속에서 형상화 되지 않는 말은..
이해가 어려우니..행동으로 옮기기도 불안한 것은 아닌지요.

'공부'에 대해서 그 고사도 미리 알아 보고 했어야 하는데..
공부에 대한 고사를 아는 사람이 몇사람이 될까요.
그 상황을 미리 학습하여 감을 잡고 있으면 알 수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깝깝하다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의 다름 말들은 공부처럼 어려운 말이 없는데..
제일 중요한 말이 그렇듯 난해하고 현묘해서야 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 입니다.
drop 은  떨어지는 이미지와 함께 해야 하고..
'낙하'는 뭐가 밑으로 떨어지는구나 하는 느낌이 있어서..
그래서..우리의 좌뇌 우뇌 합작으로 수렴되어서..진짜 내것으로 소화되는 법인데..
그 중요한 단어는 그런 것이 없다는 이야기라서..
태클을 걸고 싶은가 봅니다.

 

'공부'라는 말의 본래 의미

그런데..
잘 모르고 써 온 말인가 했더니..
보니까..잘못 쓰고 있었으니..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인가 합니다.

工夫의 원래 뜻은.
배움을 익히고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잘 벼르는..
이른바..괜찮은 사회인이 되는 종합적이고 전인적인 학습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금은..잘못 사용하고 있는데..
그중에서..지식을 습득하는 의미로만 쓰입니다.


[인용]
“공부 잘해야 좋은 대학가고, 좋은 대학가야 훌륭한 사람 된다”
공부를 못하면 제대로 사람 구실 못한다고 협박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다. “

"잰 공부를 못해서 시집도 제대로 못 갔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면,
우리 사회는 분명, ‘공부’가 모든 것의 기준이며, 잣대인 사회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강조하는 ‘공부’는 원래의 본 뜻과는 거리가 매우 멀게 사용한다.
단지 점수가 높은지, 학업 성적이 좋은지만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원래 ‘공부(工夫)’는 수행에 전념하는 것,
또는 수행에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하며, 본분에 힘을 다하는 것이란 뜻이다.
공부(功夫)라고도 한다.

“신회가 30여년 배운 공부는 오직 견(見)이란 한 글자에 있다”고 했다.
공부의 핵심은 견성(見性)이란 뜻이다.
어떤 책에서는..공부가 우리 삶 전체에 있음을 강조한다.
공부가 순수하고 한결같은 것을 말할 때는 공부순일(工夫純一)이라고 하며,
공부하여 도를 깨닫는 것은 공부변도(工夫辨道),
공부가 곧 좌선임을 강조할 때는 공부좌선(工夫坐禪)이라고 한다. 
[인용 끝]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학과 시험 준비로 알았는데..
'공부'의 진짜 뜻은 깊고 심오합니다.

교육제도가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주로 딸딸 외우는 것을 주로 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한 것은 아니지요.
마음 공부도 하고..몸도 잘 키우고..알게모르게 인격을 닦기도 하면서..
교육을 받기는 했으니..그다지 잘못된 것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아무래도 찜찜한 일이지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공부를 되게 어렵게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어렵고 귀한 것이라서 그런가요..
특정 구룹만의 전유물이었을 시절의 명칭이..
'공부'아닐까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

요즘은 '배움'이란 것이 누구나 국민으로서의 의무지요?
권리이자 의무 사항이기도 한 지금 싯점과는 거리가 먼..
배움을 특수신분의 전유물이거나 고매한 지적 놀음으로 생각했던 시절에나
걸맞는 용어 선택이 아닌가..
그런 냄새가 풍긴다는 이야기지요.

그와 비슷한 경우로..
학문이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만든 구룹이 있지않나 해서..
말씀을 더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학문은 고매한 영역이므로 어려워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삶에 활용하기 위한 실용적 개념보다는..
고매한 지적 유희..신분 결정 잣대..그렇게 보는 관점이었을 것 같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입니다만..
영어 공부하면서..이것을 나중에 써먹야지..라는 생각을 거의 해 본적이 없구요.
그래서..지금은..
영어를 도깨비처럼 무서워하고 진땀을 흘리는 대상이 된 것이겠지요.
시험 점수만 많이 받으면 되는..
인식의 방향이 한참 잘못된 경우였습니다.

솔직히..
학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학문의 세계를..
깊고 고매한 영역으로 만들려는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만..
그 중에는 신비감으로 치장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차근차근 가르치면 될것을..어려운 거야..그러니 이해하기 어려울걸....
드럽게 쉬운 것을..뭐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하는지.....
아카데미라는 우물에 갇혀서 세상이라는 현실을 무시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요즘 학자도 그런지는....
적어도 저때는 그런 사람 많았습니다.
영어도 그랬고..다른 학문도 비슷합니다.
실력에 자신없는 학자일 수록 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아직도 부끄러운 잔재의식에 노예가 되었던 사람들이 있을까요?
학문을..학문하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알았던 사람 말입니다.
옛날에는
선비들이나 학문을 했지요.
서민들은 학문한 사람을 무조건 존경하도록 분위기 잡았구요.
그래서..
학문이라는 정신세계를 특정집단의 전유물로 봤었던 것 같습니다.
될 수 있으면 어렵게 해서..누구나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구요.

엣날 신분사회에서는..
같은 인간이지만..분명 다른 부류로 봤거든요.
그런 생각은
세상이 인본 평등주의 세상이 되므로 해서..
죄악시해야 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최근까지 그런 의식이 살아 있었고..
그런 자들이 여론 주도층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
껄적지근합니다.

학문 숭상의 옛의식이 남아 있어서 그럴겁니다만..
학문하는 사람으로서의 엘리트 의식만 있었지..
실력도 없고..교육의 사명감도 떨어졌지요.
누구나 국민의 의무로 배워야한는 개명천지의 세상..
특정인 우월의식이라는 천박함 때문에..
공부하기도 어려웠고..'공부'라는 말도 어려웠던 것 아니겠는지요.
 
'공부'라는 말..
이제는 누구나 하는 공부..
그 단어에서도..
될 수 있으면 어렵게 만들었으면 했던..흔적이 보인다고 할까요.
고답적이며 비인간적인 냄새가 풀풀 나는 듯 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이 어렵기도 하고 잘못 쓰였다는 하지만..공부 잘 한 사람이 많음에야...

말이야 어떻게 되었던간에..
많은 친구들이 공부를 잘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데..

말의 꼬리를 잡고 트집을 잡거나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을..괜한 핑계로 둘러 대고 있나 봅니다.

인정은..합니다.
전적으로 제 탓이겠지요.

그러나 그 말은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쉬운 것으로..
맞는 말로.....